12. 누구를 위한 세계 여행인가

by 펜얼티밋

에런네에서 처음 가족 워커웨이어를 봤다. 바로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를 개조하여 7살 딸과 몇 달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캣과 에드리안 가족이었다. 캣은 생물학자, 에드리안은 집 수리업자였으며 에런네 집 개조와 정원일을 3주 넘게 도왔다.


내가 떠나기 전 주말에 이들과 함께 1박 2일로 근교 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스무 명이 함께 지내는 정신없음으로부터 잠깐 휴식이 필요했던 나는 흔쾌히 같이 가기로 했다.


에런의 동네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떨어진 르망Le Mans 은 인구 15만의 조그만 도시지만 '르망24'라는 자동차 경주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다. 매년 6월에 개최되는 르망24는 한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3명의 드라이버가 팀을 이뤄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 가장 많은 거리를 기록한 팀이 이기는 경기다. 6월의 뜨거운 볕 아래(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9월에 개최되었다) 작은 도시는 축제 분위기에 들썩인다.


내가 방문했던 8월의 프랑스는 미친 듯이 더웠고 캠핑카의 좌석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창문도 열리지 않는 캠핑카 뒷 칸에 앉아서 갔다. 실내 온도는 40도를 웃돌았고 땀이 물처럼 흘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딱히 가족끼리 친한 친구도 없고, 부모님 친구 가족도 없다. 제 3자로서 타인의 가족을 관찰할 수 있었던 건 워커웨이를 할 때뿐이었다. 보통은 호스트 가족이 전부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이 키위(Kiwi -뉴질랜드인을 부르는 말. 뉴질랜드인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쓰는 말이므로 무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가족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주 쿨한 가족을 상상했다. 캠핑카로 세계 여행을 하는 가족이라니,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과 1박 2일 여행을 하는 동안 이런 식의 세계 여행이라면 그냥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캣과 에드리안은 주차 문제, 화장실 문제, 길을 찾는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다퉜다. 목소리에는 짜증이 배어있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느낌은 없었고 각자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서로 상대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셈이었다.

딸 소피아도 기분이 안 좋아졌고, 급기야는 르망 성 앞에서 야외 공연을 보던 도중 캣과 소피아가 크게 싸웠다. 에드리안은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고 나는 남의 가족 싸움 중간에 어정쩡하게 끼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레이저쇼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속으로는 그냥 빨리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 서로 이야기는 해야 이동을 하든 잠을 자든 할 것 아닌가. 시간도 늦었고, 일단 말이나 꺼내 보자.


우선 캣과 대화를 시도해봤다.

"소피아는 원래 나를 싫어해. 항상 그래왔어. 지 아빠만 좋아하지. 에드리안도 그래. 소피아가 나를 싫어한다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면 나는 악역, 그이는 착한 역이지. 그게 상황을 악화시키는 줄도 몰라.“

캣은 소피아와 풀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소피아와 에드리안이 둘만 다닐 때는 혼자 가족에서 툭 빠져나와 버린 것 같다고 한다.


에드리안에게 다가가 물었다.

"원래 캣이 좀 차가울 때가 있어.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한 거야. 소피아는 원래 이렇거든."


그 둘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이 이런 일의 연속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에런의 집으로 돌아온 후 이 가족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곧바로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부가 대화를 하는 모습이나 가족끼리 노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부부 간 배려의 부재,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은 소피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소피아는 안정적인 애정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았고 또래 대비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았다. 어린 아이가 가끔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소피아에게는 이걸 바로잡아줄 어른이 없었다. 그녀의 행동은 종종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캣과 에드리안은 이를 두 눈으로 목격해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때때로 호스트인 에런과 그녀의 딸조차도 존중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떠나기 직전에는 에런과 나를 포함한 몇몇 워커웨이어들과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에드리안은 에런에게는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자기들이 일할 동안 나를 비롯한 다른 워커웨이어들이 일은 하지 않고 술 파티를 벌였다고 말하고, 나에게는 에런이 소피아를 싫어하고 자기들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내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실에 동조를 구하며 정작 에런에게는 나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에런과의 대화 이후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의 여행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세계여행은 그저 고통뿐일 것이다. 비단 남편과 아내뿐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 캣과 에드리안도, 소피아도 얻을 건 없는 것 같다.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 여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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