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의 집을 떠나는 건 쉽지 않았다. 두 달을 살고 이제 막 익숙해진 것 같을 때 떠날 때가 왔다. 그녀의 집은 낯선 유럽 대륙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곳이라고 할 만한 장소였다. 그동안 에런과 딸 릴리와도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떠나기 전 에런과 나는 다 함께 그 해 크리스마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작별의 날은 눈물로 축축했다. 9월 어느 선선하고 아름다운 날, 영국으로 가는 유로스타 기차를 타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에런의 집을 떠나고도 영국에서 워커웨이를 이어가기까지 정말 고맙게도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에런은 파리에 사는 애쉬에게 부탁해 내가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게 해주었고 덕분에 안전한 곳에서 기차 놓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뿐 아니라 데본(Devon은 영국 남서쪽, 양과 소와 말이 많은 곳이다)과 그 옆 콘월에 갈 예정이라는 내 얘기를 듣고는 데본에 사는 그녀 어머니에게 내가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질 수 있는지 물어봐주었다(감사하게도 받아주셨다). 이것도 모자라 막 워커웨이 호스트를 시작한 그녀의 친구에게 나를 워커웨이어로 받아달라고 추천까지 해주었다. 에런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음은 물론 그녀가 나를 추천해준 친구네 가족은 이후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된다.
첫 워커웨이 호스트부터 운이 억세게 좋았다. 에런을 만날 운을 모으느라 카우치서핑이 그렇게 된 건가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고마운 게 너무나 많다. 그녀를 만남으로 인해, 이 여행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놀랄 만큼 변했으니 말이다.
런던은 웅장한 위용으로 나를 맞이했다. 유로스타에서 내린 세인트 판크라스 역은 너무나 거대해서 내 기를 확 죽여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반가웠다. 역 화장실의 ”Toilet Paper Only(휴지만 버려주세요)“ 안내문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사진까지 찍었으니 말이다. 완전 능통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와 어떻게 읽는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이 그렇게 차이 날 줄 몰랐다. 프랑스가 전국 대회에서 만난 다른 학교 학생 같았다면 영국은 같은 학교에서 지나가다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치는, 보다 면식 있는 같은 학교 학생 느낌이었다.
당시 에런에게 부탁 받은 지인들 선물을 가져가느라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빨리 숙소에 가서 이걸 팔에서 떨어뜨려 놓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팔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캐리어에도 불구하고 에런에게 고마운 게 또 하나 있다(대박나세요). 내가 그녀 집에 있을 때 런던에 사는 엘레노어와 조노라는 사랑스러운 친구 부부가 찾아왔었는데 그들은 내가 런던에 왔을 때 무려 자고 가도 된다고 해주었다.
그들의 집은 영화 패딩턴에 나올 것 같은 정말 영국스러운 런던 북쪽 주택가에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조노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짐만 두고 나온 후 곧장 서(西)런던으로 향했다.
그리고 첫째, 런던의 미친 지하철 가격에 놀랐고 (도심 1회 기본이 약 2.4파운드, 한화 3,200원), 둘째, 지하철에서 데이터가 안 터진다는 것에 놀랐고, 셋째, 런던이 너무 멋있어서 놀랐다.
서런던의 버킹엄 궁전과 건물들, 심지어 사람들까지 고풍스러워 보였다. 오래된 것과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나라임이 티 났다. 런던에는 신기하게도 상대를 압도하면서 동시에 동경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런던에서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Hatchards라는 서점이었다. Hatchards는 18세기부터 운영되어 온 영국의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 인테리어도 지성의 전당 같은 느낌을 풍긴다. 안에는 잉글랜드 왕가의 정식 북 셀러라는 인장이 붙어있다. 워낙 서점이 크고 책도 많아서 구석에 앉아 여덟 시간 동안 책을 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한 시간만 구경하려다 결국 네 시간을 볕 잘 드는 소파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게 되었다.
서점은 재미있게도 그 나라 사람들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내가 방문한 2019년 9월 기준 입구 바로 옆 자리는 윈스턴 처칠에 관한 책들로 가득했었고 브렉시트 책들이 바로 옆 매대에 놓여 있었다. 그해 12월 영국 총리 선거에서는 브렉시트가 최대 이슈였고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의 의견을 추측했다. 처칠은 1940년부터 45년까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를 지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력한 전쟁 지도자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괴팍하고 독단적인 성격과 식민지배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제국주의자의 면모로 부정적인 평가를 함께 받아왔다. 인생의 긴 시간을 보수당에서 보낸 만큼 브렉시트를 지지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살아생전 유럽 내 자유로운 왕래를 지지했다는 점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서점은 자연스레 이 둘의 연관성을 반영했다. 윈스턴 처칠이 시가를 물고 있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책들과 브렉시트 책들이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영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서점 내부 눈에 잘 띄는 벽면은 베이킹 레시피북과 가드닝북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영국인 중 다수가 베이킹과 가드닝을 생활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열정을 보였다. 간단한 쿠키나 록케이크(Rock cake라고 하는 울퉁불퉁하고 포슬포슬한 작은 간식 케익), 생일 케익 등을 집에서 직접 만든다. 선반 위 헤진 레시피북의 숫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대로 죽죽 긋고 바꾸어져 있다. 한 영국인 친구는 차를 즐기는 문화와 함께 발전해온 전통적인 티타임이 스콘과 케익 등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베이킹 문화를 만들어온 것 같다고 말한다. 이를 반영해 서점에는 표지와 서체마저 아름다운 베이킹 레시피북들이 가장 눈에 잘 띄는 벽면에 점점이 누워있었다.
그들의 가드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정원에는 텃밭이나 꽃밭이 있고, 맑은 날에는 잔디를 깎으며 애지중지 보살핀다. 누군가는 시에서 임대해주는 작은 텃밭을 빌려 비닐하우스까지 놓고 본격적으로 가드닝을 하기도 한다. 정원에서 취미로 양봉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못 말리는 정원 사랑이다. 이웃끼리 만나면 서로 가드닝 정보를 나누고 자기 정원을 뽐낸다. 이들의 이런 가드닝 문화를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도 바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원 자체가 별로 없는 한국에서는 가드닝북이 순위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서점은 그 나라의 현재 이슈와 문화를 보여준다. 사회의 정보 유통 수단 중 하나가 책인 만큼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에 대한 흐름을 모아서 보여주는 게 서점이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시에 가면 되도록 서점은 꼭 둘러본다. 내가 여행하는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것에 시간을 쓰고 관심을 쏟는지 훑어보는 게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그냥 다른 언어로 된 책을 사 모으는 게 즐겁기도 하다. 독일어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한 글자도 못 읽어도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 책장에 꽂혀있는 걸 보면 기분도 좋다. 이탈리아 서점은 책의 표지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좋고, 프랑스 서점은 다리 위 노점에서도 책을 살 수 있게 해줘서 좋다. 파리 센 강변의 늘어선 중고 책과 고서적을 파는 부키니스트들은 16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당국에서 허가를 받고 영업하는 유서 깊은 파리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서점과 책은 어떤 이유로든 나를 즐겁게 해주지만 이렇게 한 국가에 대한 얕은 통찰을 줄 때 더 즐겁다. 외국의 서점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