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와 나이젤과 평화로운 일주일을 보낸 후, 그들은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나를 다음 워커웨이 호스트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워커웨이어가 아닌 손님으로 함께한 일주일은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다음 호스트 미셸과 앤드류는 에런의 오랜 친구 부부였다. 미셸과 에런은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서로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았으며 수지와도 아는 사이였다.
수지와 작별인사 후 완전히 헤어지고 나니 3개월 여행의 마지막 2주를 낯선 곳에서 낯선 가족과 무탈하게 지내겠다는 작은 목표만 남아있었다. 원래 최소 세 번의 워커웨이는 하고 싶었지만 이미 이번 여행의 목표는 몇 가지 깨달음과 다음 여행의 발판이 되어주는 것으로서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수지네 집에서 귀국 티켓과 12월달의 파리 리턴 티켓을 왕복으로 끊으며, 한국에 들어가있는 두 달 동안 제대로 된 준비를 거치고 휴학을 연장하여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에런과 톰은 그들을 '쿨한 부부'라고 표현했다.
사실 데본과 그들에게 뭘 기대해야 할지 몰랐다. 데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어바웃타임의 배경 콘월 바로 옆에 있어서 가고 싶었던 것뿐, 어차피 내게 지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래 가고 싶었던 콘월은 혼자 가봤자 재미없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고 그냥 귀국표를 끊어버린 상태였다. 이후 앤드류가 "여기 있는 동안 뭘 하고 싶어?" 라고 물어봤을 때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어요. 그냥 당신이랑 당신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서 온 거에요." 하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항상 사람이 중요했다.
그들의 집은 데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광대한 구릉인 다트무어(Dartmoor) 근처의 조그만 마을에 있었다. 걸어서 20분이면 가로지를 수 있는 마을이고 모두가 모두를 아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지극히 영국스러운 이 마을에는 학교도 있고 마을일을 논의하는 자치적인 협의체도 있었다. 시골이지만 아이들도 꽤 많았고 3-40대의 젊은 층이 많았다. 영국이라 그런지 시골이라 그런지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새로운 얼굴이 거의 없는 동네에 불쑥 찾아온 외지인인 나를 반겨주었다. 동네 자체에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형성된 따뜻한 분위기가 어려있었다. 영국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든 건 언제나 사람들이었다.
새 호스트 미셸과 앤드류는 30대 후반의 헬스 트레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부부로 7살, 9살 두 아들과 큰 개 둘, 고양이 둘과 함께 살았다. 이들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톰의 말처럼 '쿨했다.' 젋고 열린 생각을 가졌고, 자기 기존 의견과 달라도 존중하고 귀 기울였으며 배울 게 있으면 배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남을 돕는 데 있어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첫 워커웨이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에런과 이미 친분을 쌓고 와서 그런 건지 만날 때부터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들이 나보다 거의 스무 살이 많다는 사실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어로 대화할 때는 나이에 상관없이 대화 구성원 간의 평등한 관계가 가능해서 그런 것 같다. 20대 초반의 입장에서 사회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 그게 대학 교수님이든, 학교 선배든, 나보다 오래 일한 동료든 대부분 을로서 대화를 시작한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상대방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제한된다. 외국에서야 비로소 한국의 나이 계급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셸은 원래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는데 2년 전 헬스 트레이너로 직업을 바꾸며 15분 정도 떨어진 타운의 헬스장으로 출근을 했다. 그녀는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얼굴과 이 세상을 넘어선 친절함과 배려심을 가진 빛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이타적이었으며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주었다. 편리함과 타협하는 일도 없이 매사에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그녀가 한 번이라도 뭔가를 미루거나 소파에 늘어져 있는 건 보지 못했다. 그녀는 부지런히 멋진 삶을 일구어 나가는 본받을 만한 여성이자 열여섯 살 많은 언니였다.
미셸이 헬스장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남편 앤드류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앤드류는 20대에 능력을 인정받은 군장교였지만 훈련 중 산사태에 깔리는 바람에 두개골이 쪼개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3개월 간의 혼수상태 끝에 극적으로 살아난 그는 미셸을 만났으나 건강문제로 인해 장교직은 그만두게 되었다. 원래 그림과 게임을 좋아해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고 현재 사는 이층 집을 보수해서 장기 렌트를 하는 데 워커웨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세계 여행자들과 대화하는 것, 특히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두 명의 아들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앤드류의 이야기에는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었다. 입대하기 전에는 콜센터에서 일했고 이후 정신 차리기 전에는 마약도 하며 주변에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그는 누구보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미셸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이타적이었으며 하루에 몇 번씩 나를 놀리면서도 막상 도움이 필요하면 발 벗고 나서 챙겨줬다. 아이같이 순수한 면도 있고 호기심이 많은 동시에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강직한 면이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걸 물어봐도(영국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던가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날, 가장 힘들었던 날 또는 현재 읽고 있는 책 같은 뜬금없는 것들) 거절은커녕 깊은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너그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좋은 대화 상대였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를 멘토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존과 로비는 9살, 7살 된 아이들인데 처음에는 입도 잘 안 열고 수줍음을 많이 탔다. 2주가 다 갈 때까지도 솔직히 말해 친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듯 하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있거나 비디오 게임을 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과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했으니 간간이 인사와 대화를 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두 아이 다 약한 자폐증이 있다고 했지만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고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둘 다 낯선 사람인 내가 집에 들어와 식사를 함께 하고 한 집에 사는 걸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아 고마웠다. 놀랄 정도로 창의적이며 종종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들이었다.
이후의 워커웨이까지 포함해 총 네 집 중 이토록 따뜻하게 반겨주는 집은 없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호스트와 워커웨이어보다 친밀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내가 대화 중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 다른 표현으로 바꿔서 말해주었고 같이 영화를 보다 모르는 게 있으면 멈추고 물어보라며 내게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나를 동네 펍에도 데리고 갔고 이것저것 주문해서 권해주며 영국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동네 펍은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곳이었다. 영국의 주점 펍(Pub)은 바(Bar)보다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쓰며 안부를 나누고 친구들 만나 한 잔 하고, 별별 이야기가 다 오고 가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같은 역할이었다.
코로나 록다운으로 인해 영국의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을 때 앤드류가 가장 아쉬워했던 건 펍이 문을 닫는 것이었다. 동네 펍의 낮은 천장과 아늑한 인테리어, 왁자한 웃음, 50퍼센트 이상 서로 아는 사람들인 분위기는 단연 영국 문화 탑3 안에 든다.
그들이 나를 동네 펍에 데려갔을 때 그들이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인사하고 조금 있다가는 그들의 친구들이 와서 자리를 함께 갖기도 했다. 술 마시면서 떠드는 건 안 마실 때와는 다른 법, 나도 말이 많아지고 타지의 부족에 받아들여진 이방인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들과 함께 살고 친구들에게 소개되고 로컬들이 손님의 대부분인 펍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신다는 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인 것 같았다.
그들이 돼지 껍데기 튀김(Pork Scratchings 가끔 너무 딱딱해서 씹을 수 없다)나 스티키 토피 푸딩(Stiky Toffee Pudding, 대추야자로 만든 스폰지 케익에 토피 시럽을 뿌려 커스터드 크림 또는 아이스크림과 먹는다. 너무할 정도로 달다) 같은 걸 주문해주며 먹어보라고 앞에 앉아 눈을 빛내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든 내게 많은 걸 보고 느끼게 해주려고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신경 써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데본 작은 마을의 매킨타이어 가족은 사람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