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미셸의 지인 중 처트니 (Chutney, 과일로 만드는 인도식 소스) 사업을 하는 분이 루에서 신제품 시식회를 하셔서 콘월 땅을 운 좋게 밟아볼 수 있었다.
루(Looe)는 콘월 동쪽 끝자락의 아름다운 해변가 마을이다. 이제껏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빛나는 태양 아래 언덕을 따라 하얀 집들이 서 있었고 갈매기와 낚시대, 슬며시 풍겨오는 튀김기름 냄새가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섞이며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했다.
함께 마을을 둘러보고 해변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시시때때로 사람들의 아이스크림과 음식을 노리는 갈매기만이 유일한 방해 요소였다. 날씨는 끝내주게 좋았고 길에서 바빠보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 희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피쉬앤칩스를 먹고 후식으로 퍼지(Fudge)라는 버터 카라멜 캔디 같은 걸 먹었다. 메이플 피칸, 초콜릿, 바닐라 등 다양한 맛 중 메이플 시럽과 호두가 들어간 메이플 피칸이 제일 맛있었다. 이 썩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단맛이었지만 퍼지가 영국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마을에 도착하고부터 사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그냥 멍 때리고 싶었다. 처트니도 궁금했지만 그냥 그때의 날씨와 눈 앞에 펼쳐진 것, 함께 있는 사람이 좋아서 한 시간은 앉아서 머리를 텅 비우거나 내가 순간 느끼는 바를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내려가고 싶었다. 루는 그때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하얗고 파란 마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글을 써내려가는 기분은 완벽한 행복 아니면 무엇일까.
처트니 시식회는 근처에서 글램핑장을 운영하는 미셸 친구의 아름다운 마당에서 열렸다. ABC가 적힌 처트니와 3종류의 크래커를 모든 조합으로 맛보고 평가지에 맛과 식감, 가격 등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처트니는 좀 더 다양하고 되직한 잼 같았다. 토마토가 들어간 것, 고추가 들어간 것 등 독특하고 맛있어서 한 병쯤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 날의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과 새하얀 빛을 반사하는 해변 마을의 집들, 처트니의 달고 알싸한 맛은 지금도 루에서의 아름다운 하루를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
매킨타이어 가족과 보낸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이 집의 유일한 워커웨이어였다. 프랑스 에런네서는 한 번에 최소 네 명의 워커웨이어가 있어서 호스트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와 둘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깊은 대화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반면 미셸과 앤드류네서는 차를 마시며 각자의 인생에 대해, 브렉시트와 인종차별에 대해, 한국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유독 이 집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인 듯 하다.
미셸과 앤드류는 모든 면에서 유연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늦게 일을 시작해도, 심지어 그들과 놀다가 하루 일과를 빼먹어도(물론 저녁에 내가 스스로 목표를 정해 일을 마쳤다) 신경쓰지 않았다. 나를 펍과 승마장, 타운에 데리고 갔고, 미셸이 일하는/앤드류가 운동하는 헬스장에 데리고 가 사장님 직강 PT까지 듣게 해주었다. 내 편의를 많이 봐주었고 항상 나를 최우선으로 배려해주었다. 사실 그냥 모든 사람들을 자기들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사람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도울 게 있으면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제안했고 어떻게 하면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와 세상에 도움이 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 나를 돕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귀국 일주일 전 여행의 막바지에서 내 핸드폰이 고장나버려 아예 화면이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 없이 공항과 비행기를 거쳐 대륙을 건너는 일은 일종의 공포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앤드류는 아무렇지 않게 서랍에서 사용하지 않는 공기계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거 한국까지 가져가서 써. 데이터 들어있는 선불 유심칩 있으니까 그것도 끼워줄게, 잠시만."
아니 이 사람들 천사인가.
"나중에 꼭 돌려줄게요. 진심으로 정말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나는 이 약속을 꼭 6개월 후 지켰다.
미셸과 앤드류의 마을 이웃들 중 루스와 찰리는 특히 자주 놀러오는 친구들이었다. 집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루스는 첫 만남에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묻겠다고 했다.
"그게 뭔데요?" 잔뜩 긴장했다.
"혹시... 김치 만들어 본 적 있어요?" 그녀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루스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한국 혼혈 친구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을 좋아했고 집에 재료들도 있었다. 전부터 김치를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만드는 법을 도무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 혹시나 내가 도와줄 수 있나 했던 것이다. 나도 도울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김치를 만들어본 적도,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대신 후에 그녀와 함께 돼지 불백과 소불고기는 만들어줄 수 있었다.
루스와 찰리는 이후로도 자주 찾아와 차 한 잔 하며 수다를 떨다 가곤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그 한국 혼혈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루스는 그 사람을 '광'이라고 불렀다. 광 씨의 이야기는 짧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 분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남한 암살 작전(누구를 암살하려던 건지는 모르지만)에 투입되기 위한 특수부대원이었다. 그러나 탈북에 성공하여 베트남에서 아내를 만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셨다고 한다.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 영국에서 듣게 되니 신기했다. 간절히 한 번 만나뵙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돌아가셨다.
이쯤 되면 내가 여기서 놀기만 하고 일은 거의 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하루 5시간 꼬박꼬박 했다. 에런이 나의 페인팅 실력을 추천해서 미셸의 집에서도 페인팅을 주로 했다. 부엌에서 안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과 문을 칠하는 게 내 일이었다.
운 좋게 첫 호스트부터 진심으로 워커웨이어를 챙겨주는 사람을 만나 항상 자발적으로 호스트를 돕고자 했고, 이런 부분이 호스트로 하여금 일에 관해 나와 불편한 부분을 만들지 않게 도왔던 것 같다. 만약 호스트가 느슨하다는 이유로 내가 하루 3시간만 일하면서 게으름을 부렸다면 그들도 결국 내게 무언가 말을 꺼내야 했을 것이다. 미셸과 앤드류가 다방면으로 나를 도왔던 것 뒤에는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서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도 있다.
워커웨이의 진짜 묘미는 단순한 노동과 숙식의 교환에 있지 않다. 호스트가 숙식 제공을 넘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보여주고자 하고, 워커웨이어가 하루 5시간의 정해진 일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진심으로 호스트를 돕고자 할 때. 워커웨이가 진정 빛을 발한다.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원리다. 한 쪽만 최선을 다한다면 유지가 불가능할 뿐더러 그 너머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보기는 불가능하다. 적당한 정도로 하면 적당한 경험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둘 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