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직접 보기 전에는 뭘 원하는지 몰라

by 펜얼티밋

런던의 서점은 좋았지만 도시로서의 런던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멋있고 동경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신없고 복잡해서 결코 그 어디에도 집이라 부를 만한 건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저 큰 도시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조노와 엘레노어의 따뜻한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런던을 떠나 영국의 남서쪽 데본으로 향했다. 첫 일주일은 프랑스 호스트 에런의 어머니 수지와 그의 남편 나이젤의 집에서 보냈다. 노부부의 집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인생의 경험이 많이 쌓인 사람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조언과 과분한 대접을 받았으며, 이곳에서 차분하게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공원이라 착각할 정도로 넓고 잘 관리된 정원,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판매할 목적으로 이 집을 사서 리모델링했고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They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they see it.”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


순간 사람들 다 대학에 가니까 나도 가긴 갔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친구들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십대를 지내면서 내가 원하는 걸 찾으러 다닐 기회가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뭐에 가슴이 뛰는지 직접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이 쫓기며 살았다. 앞에 수백 개의 갈림길이 있는데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쫓기며 일단 어느 길로든 발을 들여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는 10킬로쯤 지나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아버린 것이다.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당장 눈앞의 과제를 하느라, 내신 관리하느라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회도 말린다. 네가 뭐가 되고 싶은지는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수능 준비하고 내신 준비해. 나중에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점수 달려서 못 하면 안 되잖아.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건 시간이 지난다고 알아서 깨달아지는 게 아니다. 직접 이거 해보고 저거 해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저 말대로 하다간 결국 점수는 되는데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된다. 예전의 나와 내가 무수히 많이 본 사람들처럼 말이다.


중학교 3학년, 대학교 잘 가는 게 내 인생의 목표였다. 대학교에서 뭘 배우고 싶은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나중에 붙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아무도 그런 거에 관심 가져주지 않았고 나조차도 잊은 지 오래였다. 중학교를 차석 졸업해서 집에서 2시간 거리의 A 기숙형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집 사정을 고려하면 분에 넘치는 결정이었지만 내가 A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한없이 어깨가 올라갔던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지원해주려고 하셨다.

A고등학교는 딴 세상 같았다. 휴대폰은 소지할 수 없었고 기숙사 방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먹고 자고 싸는 시간 빼면 하루 종일 공부 또는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학교는 놀랄 만큼 군대식이었다. 나보다 학년이 높은 사람이 지나가면 그 사람을 알든 모르든 안녕하세요 하고 허리 숙여 인사해야 했다. 한 번은 신입생들이 학년을 착각해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단체로 혼나기도 했다. 그때 선배는 “학년을 모르겠으면 알아서 보이는 사람들한테 다 인사해야지.” 라고 했다. 밤 11시까지 했던 야간 자율학습에서 PMP로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감독에게 혼났고 졸아도 혼났다. 다른 애들은 이미 고등학교 과정 선행 학습은 기본으로 다 끝내고 왔고 커피 원두를 씹어먹으며 공부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했다. ‘사육 당했다’ 가 완벽한 표현 같다.


난 2주를 버티다 A고등학교에서 도망치듯 전학 나왔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B고등학교도 우리 지역에서 모의고사 성적이 좋은 편이었지만 원두를 씹어먹는 친구는 거의 없었고, 모르는 상급생들에게 허리 숙여 매번 인사하지 않아도 됐다. 사육 당한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여기도 애들의 목표는 서울대였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담임 교사와 상담할 때도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은 어디밖에 못 된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내가 청소년 인권과 청소년의 삶에 관심을 가졌을 때 선생님은 내가 ‘딴 길로 샜다’고 말했다. 9시 등교가 정식으로 시작됐을 때도 8시까지 오지 않은 친구들은 발바닥을 맞았고, 심지어 같이 맞을 친구를 골라야 했다. 담임 교사한테 이건 잘못됐다 말하러 갔다가 교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너는 친구들 앞길을 막는 이기적인 애’라는 얘기를 교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듣고 싸우다 나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주변 친구들 중에도 그런 애들이 많아 우울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번도 상담 받을 생각은 안 해봤고 아무도 상담 받아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인생 망한 거라는 고등학교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볼 시간도 없어 인생이 두 배로 막막하게 느껴졌다. 내가 수능특강에서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 눈 가는 곳에 발 한 번씩만 담가봤더라면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었을 텐데 아쉽다. 대학이 인생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수능 끝난 날 인생이 끝난 듯한 허무함을 느끼지도 않았을 텐데.


They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they see it.

아직도 십대와 이십대들에게 자기 세계를 둘러볼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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