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선택권이야 이 바보야
교육은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바보같은 과거의 나에게
수천 년 간 교육은 돈 많은 집안 자녀들의 특혜이자 사회 계층 구조를 공고히 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한국땅에서 여성이 대학 교육을 당연히 고려할 수 있게 된 것은 백 년도 되지 않았다. 지금도 분쟁과 가난에 시달리는 국가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거리에는 총소리가 울리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구하는 것만도 쉽지 않다.
노동자 계급에서 태어난 아이, 그것도 여자 아이가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더 나아가 대학 교육까지 마친다는 것은 사실 2021년을 살아가는 십 대 이십 대가 무심코 생각하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아니다. 언제 총을 맞을지 모르는 곳, 교육보다 굶어 죽지 않는 게 우선인 곳, 여성의 사회적 가치가 오로지 재생산과 남성의 뒤치다꺼리로 결정되는 곳에서는, 또는 그저 백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대학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몇백 년 동안 누군가 대신 싸워준 덕분이고 운 좋게 20세기 끄트머리와 삼팔선 바로 아래에 걸쳐 한국에 태어난 덕분이었다. 엄청난 행운이자 특권이었다.
그러나 철없게도 막상 행운을 누리며 학교에 있을 당시에는 학교가 그저 나의 숨통을 조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의 학교는 말 그대로 감시 기관이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10년대에는 단지 국수사과 기본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기만을 바라는 고마운 교육 기관이었다.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지만 멍청한 질풍노도 사춘기 소녀는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학교는 알고 싶지도 않은 걸 주입식으로 강의하는, 재미없는 억압일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고등학교는 재미없고 지루하긴 했지만 억압은 결코 아니었다.
학교는 재미는 없더라도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응당 알고 있어야 할 기본 지식(읽고 쓰기, 역사, 기초 외국어, 기초 과학과 수학 등)과 누군가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정제한,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 이론과 가치들(상대성 이론, 케플러 법칙, 사회계약론, 평등사상, 민주주의 등)을 그것도 거의 무료로 가르쳤다.
문제는 이 중요한 사실을 대학에 가서도 아직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게 대학교는 고등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능과 우울증, 그 외 모든 고생을 뚫고 들어왔건만 대학은 실망만 안겨주었고 마침 앓고 있던 심각한 우울증은 상황을 극단으로 끌고 가버렸다. 학교에 가는 게 정신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말았던 2018년 말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그때 말려준 모두에게 감사하게도 나는 자퇴 대신 휴학을 택했다. 당시에는 우울증이 대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모른다고 대학교를 떠나고 나니 어른들이 대학 가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백화점에서 열 시간 동안 서서 팔고 싶지도 않은 걸 팔면서, 피시방에서 사방에 난무하는 흥분한 욕설을 들으면서 또는 몸도 마음도 편하고 일도 쉬운 피자집에서 일하면서, 나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대학을 안 가면 이런 데서 일하게 되니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백화점과 피자집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기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고를 수 있도록 선택권을 가지는 게 낫다는 얘기다.
나는 말을 잘 해서 판매왕이 되는 데 관심이 없었고 최상의 서비스로 손님들이 다시 찾는 매장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그렇게 된다 해도 기쁠 것 같지 않았다. 설령 몸이 편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더라도 불행할 것 같았다.
옛날에는 똑똑하고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선택권이 없었다. 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데 부모가 농부라면 부모 따라 땅을 일궈야 했다. 일찍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면서 농사일을 하고 주어진 것 안에서 살아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대부분 초중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국가에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여기까지만 마쳐도 굶어 죽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좀 더 펼쳐보고 싶다면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다. 만약 천문학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면 다른 분야로 전과를 할 수도 있고 상담을 받아볼 수도 있고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흥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냈을 때 기왕이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게 백배천배 좋다.
예로 나의 경우를 보자. 만약 내가 대학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였거나 자퇴를 한 상태였다면 나와 맞지 않는 인생에서 벗어날 방법은 재수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수능 성적이 뛰어난 것도, 성격이 독한 것도 아니라 재수 성공 가능성도 5퍼센트 미만이었을 테고. 그리고 아주 아주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대학을 안 나와도 본인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 대학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축하한다. 대학 갈 필요 없다.
엄마가 "나중에 공부에 발목 잡힐 일 없게 지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던 이유는 나이 들어서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기회가 있을 때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이걸 스물세 살, 대학 2학년으로 복학하는 시기에 진심으로 느끼게 되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어려서는 "대학이 뭐! 엄마 그거 학벌주의야!"라고 생각없는 말을 지껄였는데 그때는 내가 나중에 어떤 삶의 방식을 원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크고 보니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대학을 가야만 얻을 수 있더라. 엄마 미안 사실 엄밀히 따지면 뭘 원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선택권을 얻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복학을 염두에 두고 열 달 동안 외국을 떠돌고 나자 전에는 없던 호기심이라는 녀석이 생겼다. 왜 미셸과 앤드류는 나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에 앉아 스콘을 먹는지, 나는 몇천만 원 내고 대학을 다니는데 어떻게 필은 공짜로 대학에 다닐 수 있는지, 어떻게 크리스티나는 영어와 스페인어 둘 다 모국어급으로 구사할 수 있는지 등 역사, 사회경제가 여행에서 만난 친구 개개인과 연결되자 친구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가 지적 호기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읽어야 한다고 해서 읽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세계사 책을 읽고 사회과학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에 없던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펼친 어느 날 문득 "공부에도 때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른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나이 들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니 어릴 때 해라"는 그 오래된 뜻도 맞다. 내가 선택권을 쥘 수 있는 루트로 가느냐 아니냐는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 정도로 꽤 일찍 결정되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단 "내게 맞는 공부가 맞는 시기에 오면 공부가 쉽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누가 중요하다고 해도 내가 중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금방 포기해버리는 일명 구제불능 타입이다. 열여덟 살의 나를 붙잡고 세계사 책 읽으라고 백날 이야기해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다. 경험과 나이, 주변 상황에 따라 호기심의 대상은 달라지고 대상이 맞아야만 공부가 된다.
열여덟 살의 나는 수능은 제쳐두고 청소년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비교적 쉬운 사회학 서적을 일주일에 네댓 권씩 읽어나갔고 열아홉 살에는 근현대 한국 문학과 잡다한 소설을, 스무 살에는 채식과 환경 및 세계 식량 체계에 대한 책을, 스물두 살에는 세계사에 대한 책과 유명인의 전기를 읽었다. 주변 상황과 내적인 변화에 따라 호기심의 대상은 변해왔다. 그때그때 꽂힌 분야에 대해서는 공부가 즐거웠고 항상 공부보다는 딴짓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딴짓을 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즐거웠을 것이다. 나는 의무감만으로는 이렇게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약간 기분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부를 딴짓으로 만들어야 하기 쉬웠다.
뭐, 그렇다.
호기심과 선택권을 얻고자 하는 마음, 이 두 개를 믿고 대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2년 전에는 끔찍하게 싫었는데 지금은 가슴이 뛴다.
그러니까, 봐, 이 멍청한 과거의 나 같으니.
엄마 말 들어서 해로울 거 하나도 없잖아.
그 때 자퇴했으면 너 나한테 죽었다.
2년 후의 너는 대학 생각하면 설렐 거니까 그냥 자퇴 말고 휴학해 똥멍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