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 펜바스 컬처뉴스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스페인 발렌시아 부근 부뇰 (Bunol)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마토 축제 ‘La Tomatina’가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토마토를 던지며 마을 전체를 ‘토마토 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세계 각국에서 이 날을 위해 날아온 사람들은 무려 100톤이 넘는 토마토를 길가에 뿌리며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한다.
라 토마티나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는 동네 아이들끼리 토마토를 던지며 싸우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마을의 주민이들이 공무원들의 행정에 화가 나서 토마토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1944년이나 45년 즈음,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직후 이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 정도다. 2013년부터는 안전상의 이유로 티켓 판매를 통해 한 해 20,000명만이 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라 토마티나는 나름대로 규칙을 갖고 있다. 토마토를 던지기 전에 반드시 손으로 으깨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옷을 찢거나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물건들을 소지해선 안된다. 물론 이러한 규칙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미친 듯이 토마토를 던지고, 그 안에서 헤엄치며 정신 줄을 놓는 것이 이 축제의 진정한 묘미다.
하지만 최근 라 토마티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나이지리아에서 주요 식량이 토마토가 기습적인 나방들의 공격으로 전체 수확량을 80%를 잃자, 토마토 축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이지리아의 식량 문제가 스페인에서 열리는 토마토 축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세계 유명 음식평론가들과 요리사들 역시 스페인의 이 낭비스러운 전통에 대해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라 토마티나는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축제에 사용되는 토마토들은 대부분 썩었거나 품질이 좋이 않아 소비자들의 식탁까지는 가지 못하는 상품들이다. 하지만 이 축제가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 역시 토마토를 던지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만한 관점이다. 우리 모두 어릴 때 ‘음식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는가?
어릴 때 뉴스에서 ‘스페인 토마토 축제’라는 영상이 나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온전히 라 토마티나를 하나의 축제로만 생각했었지,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보다 어린 수많은 아이들은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매일같이 기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던지고 노는 축제를 상상하는 것조차 가능한 일일까?
라 토마티나는 분명 시대에 맞지 않는 문화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화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나라 각 지방마다 펼쳐지는 예산 낭비 축제들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축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이 문제를 생각하면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알지만 그 전통과 고유의 문화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1년에 딱 한 번 오로지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펼쳐지는 라 토마티나만큼은 눈을 감고 면죄부를 주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조금 색다른 시각, 특별한 이야기
www.penva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