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ies - 펜바스 컬처뉴스
토목이라는 건 건축이랑 아주 헷갈리는 단어로 둘 다 건설에 속하지만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해 건축은 건물, 공원과 같이 사람이 들어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짓는 일을 말하고, 토목은 부지, 도로, 교량, 공항처럼 차량, 기계, 건물 등이 지나다니거나 설치될 수 있는 시설을 짓는 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건축보다 몇 배~몇천 배는 큰 건설이라는 이야기이다.
전역 후 피둥피둥 놀던 시간 동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사실 용돈은 부족하지 않았으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자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중에 헬 오브 헬 이라 칭하는 노가다, 그중에서도 더욱더 헬오브헬임을 보여주던 토목현장 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해보게 되었다. 어릴 때 거제 쪽에 살았던 탓인지 스케일이 큰 것들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국내여행은 가장 땅이 넓다던 대전과 호남 위주로 다녔고, 해외여행은 그렇게 땅이 넓다던 몽골을 다녀왔던 나였다. 스케일이 큰 걸 좋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도 그런 탁- 트인 곳에서 해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아르바이트 첫날, 나는 직행버스 40분 거리의 장소에 도착하여 작업반장님의 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30분을 달려도 현장이 나오는 것 같지 않아서 운전 중이던 작업반장님에게 "현장은 언제쯤 도착하나요?"라고 순진하게 물었고, 작업반장님은 아까부터 30분 동안 열심히 지나온 도로와 다리 전체가 우리 현장이라며 빙그레 웃으셨다.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간단히 조회와 체조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사람이 더 많았다. 다문화 다문화 하는 건 TV에서만 보았지 산업현장에 나가면 외국인이 더 많다고 하는 것을 아침부터 몸소 체험했다. 처음으로 맡았던 일은 측량기사를 따라다니며 측량 보조를 하는 것이었다. 측량이라는 단어 때문에 정밀하고 세밀한 움직임을 상상했는데 막상 작업에 내던져진 내가 하는 일은 200미터 단위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측량봉을 세우고 야광 안전띠를 설치하고 그 멀리서도 보일 수 있는 깃발을 휘두르는 일이었다. 측량점에 도달하면 측량봉, 야광띠를 바닥에 파지, 그리고 완료되었다는 사인을 보내기 위해 깃발 10회 휘날리고, 측량 시점에 있는 측량기사님이 오케이 사인을 하면 또 200미터 지나서 반복. 이건 이름만 세밀하고 정밀한 것이지 실제로는 육상이었다. 육상 아르바이트가 무언지 알게 된다.
두 번째로 맡은 아르바이트는 지반 평탄화 작업이었다. 평탄화 작업은 자갈(골재)과 아스팔트를 깔기 전 정비한 비포장로를 단단히 다지는 작업으로, 쉴 새 없이 진동하며 땅바닥을 다지는 무거운 기계를 계속 밀고 다니는 일이다. '덜덜덜덜덜' 그렇게 힘차고 빠르게 진동하는 기계는 살면서 처음 보았다. 며칠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팔이 덜덜덜 떨리는 듯하다.
그 이외에도 며칠간 다양한 일을 맡았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단순 노가다 일부터 아스팔트 포장 차량이 지나가면 주변에서 삽질을 하고 테두리에 떨어진 아스팔트 부스러기를 삽으로 다지는 마치 군대에 한번 더 다녀온 듯한 그런 작업들을 하였다. 그렇게 맺힌 땀방울은 아스팔트 특유의 석유냄새와 작열하는 태양 덕분에 마치 소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소주들을 마시던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토목현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나는 주변에 흔하게 보이며 의식조차 할 수 없었던 도로들에 경외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차로 10분 만에 쌩- 지나가는 그 2차선 도로는 알고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정성스레 포장한 아스팔트 길이었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확실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의 아르바이트였던 것 같다. 물론 다시 하라면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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