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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Feb 28. 2019

우리는 고래의 마음을 잘 모른다

카페창업에 대한 단상

    

혹등고래는 수면 위로 뛰어오르거나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래인데 사냥 방법 또한 다양하고 독창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마리가 물속에서 공기 방울을 뿜어 만든 원형 그물에 청어떼를 가둔 뒤 일제히 잡아먹는가 하면 물고기 떼를 향해 갑자기 돌진해 입을 벌려 삼키기도 하고, 꼬리로 수면을 강하게 때려 이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물고기를 실신시켜 잡아먹는 등 다양한 사냥법을 동원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함정 사냥’이라는 방법이 혹등고래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바다 표면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한동안 제자리에 머물면서, 물새들의 공격에 쫓긴 물고기 떼가 대피하도록 유도한 뒤 삼킨다고 합니다. 혹등고래의 벌린 입을 피난처로 여긴 물고기들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꽤 오랜 시간동안 기다린다고 하는데, 종종 기다란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물고기들을 입안으로 몰아넣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직하게만 보이는 고래이지만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상황에 따라 구사하고, 단순히 쫓아다니는 방법이 아니라 상대방이 다가오도록 하거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배를 채운다는 점이 놀랍기도 합니다.    


며칠 전 지방 한 도시의 카페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다 지금은 창업 컨설팅과 원두 납품을 진행하는 지인의 출장길에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의 목적은 새롭게 카페를 준비 중인 지인의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규모가 있는 지방의 중소도시는 수도권과 비슷하게 카페 문화가 활발한 편입니다. 여기서 활발하다고 함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한 구역이 카페 골목으로 떴다가 어느 순간 열기가 식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하는 트렌드는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가로수길이, 북촌이, 성수동이 걸어간 길을 자본의 손길 닿는 도시에서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동안 열풍을 몰고 왔던 카페골목이 지고 구도심의 개발과 더불어 새로운 카페 골목이 생성되고 있었습니다. 부지에 새로운 건물을 올린 대형 카페부터,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 일본풍의 실내와 미니멀한 디자인의 카페 등 이미 치열한 격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마카롱을 비롯한 디저트 카페들도 여러 곳 보였습니다. 얼핏 보아도 대단한 자본력을 투입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첨단 주문방식에, 베이커리는 기본이고, 20대 여성 고객의 SNS용 사진을 위한 수많은 아이템이 장착된 카페가 엄청난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모습에는 입을 다물 수 없을 지경이더군요.    



고래들의 사냥방법만 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이라는 공룡은 이미 카페 문화를 커피 문화의 저변확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첨병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카페 골목의 활성화가 가져오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차익을 거두려는 목적을 지닌 고래들의 격전장에서 과연 작은 물고기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날 컨설팅을 위해 방문한 곳에서 느낀 점은 고래의 이와 같은 큰 그림에 전혀 대응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작은 물고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같은 골목이지만 주요 포인트에서는 한 블록 밀려난 입지, 거기에 1층도 아닌 2층이라는 핸디캡, 아기자기하고 독창적인 인테리어를 진행할 자본력 부족 등 이미 경쟁력애서 상당부분 뒤쳐져 있었습니다. 차별화를 위해 운영자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작은 서점의 콘셉트와 독서 모임 등 커뮤니티 운영 등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도 활발히 이름을 날리며 익숙한 서점들도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는 곳이 속출하고 있고, 운영자 본인이 출판 유통과 관련해 전혀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별도의 인력 없이 카페까지 동시에 운영하는 점은 전문성에서 매우 떨어져 보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작은 책방의 마진율은 그리 높지 않아 큰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현재 출판계의 상황이고, 그 수익에 비해 큐레이션과 고객 관리를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매운 많은 분야입니다.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의 장소로 카페가 활용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들로부터 거둘 수 있는 수익에 대한 예상 데이터도 확보하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고 있는 카페에 대한 오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 카페는 커피 맛이 뛰어나기 때문에 기다리면 손님이 올 거야. 커피 말고 책까지 판다면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보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있으니 입지는 크게 작용하지 않을 거야. 과연 그럴까요? 적어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라 여유를 소비하러 가는 곳입니다. 카페는 다른 어떤 품목보다 카페 본연의 상품 판매로 먼저 승부를 보아야 하는 곳입니다. 내가 셀럽이 아닌 이상 부담스런 동선을 이해하면서까지 지속적으로 찾아와주는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한 가지도 주변 카페보다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카페의 앞날이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 카페는 공사를 진행할 것이고 오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상을 깨고 훌륭하게 성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문을 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어떻게든 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고래가 그저 우아하게 수영하며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만 보고 있지만 그에게도 항해는 생사를 건 숙명입니다. 고래와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는 물고기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더 철저하고 더 현실적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겨울도 막바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봄은 저만치 있는데 내게도 봄이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긴 항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간절해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더 치열해지지 않는다면 봄을 빼앗기고 말지도 모를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
닭이 알을 품고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이,
굶주린 자 밥을 찾고 목마른 자 물을 찾듯이,
어린 아이가 어미를 찾듯이.    

切心做工夫, 如雞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 휴정(休靜, 1520~1604), 『선가귀감(禪家龜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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