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을 추억하는 날
한 철 내내 천장만 보며 부유물질로
떠돌던 그의 영혼은
정작 장마가 시작되기도 전
양수를 쏟듯 자신의 추억을 남김없이 흘려버렸다.
거절당할까
두려웠을까
창백하고 위험한 삶을
이어간 아버지
반 아이들에게 쥐어줄 가정통신문
등사(謄寫)를 위해 밤마다
숙직실에서 매만지던 철필의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그날 밤
떠난 뒤에야 찾아올 이유를 챙기던 우리를
용서하고 떠났다.
그의 온기로 불을 지핀 뒷방에서
우리는 하룻밤을 뒤척이다 또 헤어지리라
오 년째 같은 꿈,
아버지의 꿈에 굵은 장맛비가 내리는 꿈을
꾸기 위해 다시 길 위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