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못났다는 사실은 조금만 골똘히 생각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일인데도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직도 욕심이 많이 남아있다는 증빙인데 살면서 이것도 점점 쉬워져 간다. 주말 여행 코너에 있어서는 안 될 책을 움켜잡고, 커다란 삶의 지식을 얻고 조금 당혹해진다. 그래도 인정한다. 아직 한참 못났구나.
이현석은 내가 떠나온 분지에 어릴 적 흘러들어가 터 박고 있는 자다. 무료한 대학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버렸고 갑자기 다시 공부를 시작해 의사가 되었지만 그 직업이 취하는 부를 뒤로 하고 살아가는 젊은이다. 그의 책 <여행자의 인문학노트>는 여행기지만 사진이 없다.
“공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물과 공감에 대한 묘사와 이를 통해 재발견하게 되는 여행과 세상에 대한 물음표이지. 미흡한 사진 실력에 얻어 걸린 그럴듯한 사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세상 여러 곳 땅들이 간직한 아픈 기억들을 여행가방에서 풀어놓으며 우리의 고민을 요구한다.
그가 떠난 곳은 그저 아름다워서 여행객들에게 의미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래전 아픔을 겪었거나 얼마 전까지 상처를 안고 있는 곳, 또는 여전히 슬픔을 견뎌야 하는 곳이다. 스페인 내전, 네팔 분쟁,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그곳에 뿌리 박고 살아온 자든 스치고 지나는 사람이든 이방인의 뒷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이다.
“역사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일을 수치로 여기는 이들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상상하힞 못하는 것처럼, 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이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의 삽질이 고통스럽고 지우고 싶지만 우리는 또렷이 맞서야 한다는 것을 이 서른 살 젊은이는 뜨거운 ‘이베리아 반도의 프라이팬’에서 깨닫는다. 지금은 부질없어 보이는 일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우리의 삶이 먼 미래의 의미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대장간에서 주철을 만들 때 강도를 높이기 위해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부질(불질)이라 했다. 그리하여 부질없다는 말이 공연히 쓸모없는 짓을 했다는 뜻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삽질’이 주철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부질없어 보이는 일이 기실 가장 중요한 부질인 것이다.”(세비야, 스페인)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모어와 모국어로 나뉜다고 말한 언어학자 다나카 가쓰히코의 말을 빌어 차이와 섞여 있음에 대해 무감각한 한국인의 폭력을 고발한다. 카쓰히코에 따르면 모어는 태어나서 처음 익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며 한 번 익히면 벗어날 수 없는 근원의 말이다. 모국어는 자신이 국민으로 속해있는 국가, 즉 모국의 국어를 뜻하며 근대 국민국가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그들을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다.
“모어와 모국어를 애초부터 동일시하는 우리의 일상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나고 자라면서 만들어진 환상일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이런 환상에 대한 공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경계인들이 당해야만 하는 사회적 폭력은 다양하다.”(시온고마을, 우즈베키스탄)
의사답게 과학적 상식을 통한 적절하게 사용하는 필자의 솜씨는 그의 공부가 만만치 않음도 보여준다. 생각과 지식, 글 쓰기를 한 묶음으로 이어낼 수 있는 능력은 쉽게 익혀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미움은 하이포용액의 상변화(相變化)와 같다며 태국에서 만난 일본 친구에 전한 조언이나 히말라야를 향하는 네팔에서 고산병을 극복하는 두 가지 방법, 산을 내려가거나 순응을 돕는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을 통해 급변하는 현대사에 매몰차게 내밀린 사람들의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떠나기는 쉬우나 알기는 어렵다. 길 위의 풀도, 손 안의 차표 한 장도 허투루 있는 법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