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에 찾아나서는 사진전시회
▶ 바람 속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진가 김영갑(1957~2005)이 세상에서 버려지고 10년이 흘렀다. 다 알지만 그의 작품을 보려면 비행기를 타야하고, 제주라는 지명이 언급되기 전까지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사진가로 남아 있다.
2002년 그의 생전에 폐교를 개조해 운영을 시작했던 두모악 갤러리는 당시에는 관공서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10만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그렇게 그가 애타게 담으려고 노력했던 제주 오름의 바람은 이제 사진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제주의 자연은 그에게 안식처였던 것 같다.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정착한 그 땅에서 결국 몹쓸 병을 얻었지만, 들판에서 당근으로 허기를 달래면서도 인화지 값을 아끼기 위해 들녘의 한 가운데 꼿꼿이 서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나의 친구, 들판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줍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 고요한 몸짓으로, 그렇지만 온몸으로….”
사진이 조금 알려지면서 끼니를 걱정하지도,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병이 깊어지면서 몇 년동안 사진을 못찍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다 쓸쓸이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의 사진 속 억새와 나무와 풀들의 그 아우성치는 몸짓들은 그토록 움직여보고 싶던 그의 열망을 앞서서 표현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생전의 저서(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통해 자신의 사진이 “외로움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썼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파노라마(6×17) 사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그러면서 사진의 홍수 속에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슬펴했다. “한 장의 사진에 사진에는 사진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어이없이 재단되고 변형되는 것”을 개탄했다.
욕망의 배설구로 사진을 소비하는 더 염치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오늘을 그가 보지 않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것일까. 서울 인사동 인근 아라아트센터에서 그의 대표작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린다. 9월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선 제주의 '오름'을 주제로 70여점의 컬러작품을 선보인다.
▶ 사람 속으로…
인화지에 각인된 사각의 형상 자체로 평가받는 사진. 디지털 시대에 사진이라는 매체는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가정마다 보급된 카메라와 범람하는 이미지, 무한 복제의 세상에서 사진이 예술로서 감동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올해 초 사진작가 존 말루프가 수천 통의 필름과 15만장의 사진을 단돈 350달러에 구매한 뒤 얻게 된 환상적인 결과가 조금이라도 사진을 아는 체하는 이들에게 화제였다. 2007년 한 창고 세일에서 습득한 그 사진들은 SNS를 통해 네티즌들의 열광을 얻어냈고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라는 이름은 그렇게 전 세계 사진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의 사진들은 일생을 어린아이를 돌보는 유모 ‘내니’로 지내며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 살았던 일상을 찍은 것이다. 전문적인 사진 교육은 받지 못했으며 거리에서 아마추어로서 틈틈이, 아니 매일 찍은 사진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순간포착의 적절함과 쉽게 내뱉지 않는 화법은 여는 프로 작가가 보여주는 것 이상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주로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는 상대방이 사진에 찍히는지 알아챌 수 없는 은밀한 도구였기에 편안한 일상을 담는 것이 가능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의 렌즈는 누구보다 깊숙이 피사체에 가까이 들어갔다는 것이 보여지지 않은 사진들을 감상한 이들의 평가다.
성곡미술관은 비비안 마이어의 ‹내니의 비밀 The Revealed World of Vivian Maier›전을 같은 시대를 산 유명한 남성 사진작가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전과 동시에 9월20일까지 개최한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산 두 사진가의 사진과 필름으로 구성된 대규모 특별전으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어떻게 내 일상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매너리즘에 빠진 생활사진가들에게도 낡은 선풍기같은 역할은 해줄 것으로 생각된다. www.sungkokmuseum.com
▶물 속으로…축제 속으로
몽환적이고 독특한 사진을 좋아하는 생활사진가들이라면 수중사진 전문작가인 제나 할러웨이(Zena Holloway)의 사진전을 기대해도 좋겠다. 9월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더 판타지'로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사진들을 중심으로 할러웨이의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작가가 전시 기간 중인 7월 10일 방한해 한국 관람객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엔젤스(Angles)'를 비롯해 '더 워터 베이비(The Water Babies)-부제: 육지 어린이를 위한 옛날 이야기' 등이 공개된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리며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www.zenaholloway-korea.com
이밖에 대구사진비엔날레, 서울사진축제와 함께 3대 사진축제로 꼽히는 동강국제사진제가 7월24일 개막한다. 올해 14회째를 맞은 동강국제사진제는 세계 전역의 다양한 사진문화와 현대사진의 진수를 선보이는 <주제전>과 <국제공모전>을 시작으로 14회 수상자로 선정된 백제대 정주하 교수의 <동강사진상 수상자전>이 개최된다.
강원도민의 초대행사로 <강원도사진가전>은 강원도 여성사진가들의 포트폴리오 공모를 통해 최종 선정된 5명의 여성사진가의 기획전으로 준비되고 <영월군민사진전>은 사진문화를 통해 영월군민과 소통하고 사진문화를 확장하는 군민 초대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이밖에 사진의 고장 영월의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기 위해 <영월사진기행>도 새롭게 선보인다. <동강사진워크숍>은 국내의 사진 행사를 주도해 온 이일우 선생의 실험적 기획으로 예년의 사진워크숍 형식을 탈피해 ‘한국사진의 현재와 미래’라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5개 프로그램이 세미나 형식으로 동시 진행된다. 또 전국대학 평생교육원의 추천을 받은 우수한 사진작품들로 구성된 <평생교육원사진전>도 마련돼 전국 사진애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각예술을 공유하게 된다.
이밖에 동강사진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는 <보도사진가전>이 열리고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거리설치전>은 전국에서 모인 4명의 신진사진가들이 실험적인 시도로 재해석 한 영월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dgphotofestiv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