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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Feb 16. 2020

‘맛이 있다’와 ‘맛있다’

일용할 작은 영화이야기



끝나가는 방학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영화를 보러 떠난 사이, 전날 먹다 남은 보급형 마르게리타 피자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밀가루 속으로 다시 녹아들던 토마토소스의 체취가 눈이 내리는 지금까지 미열처럼 남아 있다. 며칠을 뜨겁게 온라인과 방송을 달구던 영화 <기생충> 관련 소식이 이번에는 ‘기생충 투어’로 옮겨 붙었다. 반지하방, 골목 슈퍼, 피자가게가 있는 동네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단다. 영화가 성공하면 촬영지와 소품들이 덩달아 특수를 누리기도 하지만 빈곤의 문제를 다루었던 영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난마저 전시하고 구경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이 그 영화의 문제의식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듯 끝 모를 질주를 하고 있다.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이 수없이 접어대던 박스, 4개중 하나는 불량이라 돈을 줄 수 없다는 피자가게 사장의 핀잔, 그리고 사기 취업한 뒤 의기양양하게 가족들이 주문했던 피자의 기억이 버리려고 집어든 포장박스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최근에야 그 영화를 보며 그들의 빈곤, 혹은 불행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없고 오로지 비극만 드러나 짐짓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편집인)은 “기생충은 빈곤 상태에 있지 않거나 빈곤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의 일원인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이나 책임감 없이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냄새 맡고 가지고 놀게(수익, 명예, 행사, 파티 등) 해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향과 평가는 저마다의 몫이고, 어찌되었든 봉 감독의 성취야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유럽연합 입법부는 1999년 피자를 굽는 장작불 오븐의 온도를 250도로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하려다 접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폭동에 가까운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400도가 넘는 장작불 오븐에서 구워져야 제대로 된 나폴리 피자라는, 자부심에 흠집을 낼 수도 있었던 시도는 곧바로 철회됐다.      


라치오의 가에타에 있는 한 교회에서 피자란 단어가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피자의 원조는 라치오라는 의견을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내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피자하면 나폴리를 꼽아야 한다. 나폴리 가난한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워주면서 피자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마르게리타 피자의 전설은 이제 흔해빠진 에피소드가 되었고, 나폴리 피자라는 이름은 지적 재산권이 되었다. 빈자의 음식은 그렇게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에 정착했고, 지금은 다양하게 변형되어 전 세계인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1889년 나폴리의 유명 식당 브란디(Brandi)의 주인 돈 라파엘레 에스포시토가 이탈리아 움베르토 1세의 아내이자 사보이 왕가 출신의 여왕 마르게리타를 위해 토마토, 모짜렐라 치즈, 바질로 이탈리아 국기의 세 가지 색으로 장식한 피자를 제공했다. 여왕이 흡족해 했고 이때부터 마르게리타(margherit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인도 영화 <행복까지 30일>은 어두운 현실을 어둡지만은 않게, 그렇지만 드러내 보일 것은 내보이며 이런 현실이 어디서 오는지를 이야기한다. 맞다. 오늘은 피자를 소재로, 빈곤을 대하는 사회의 이중적 모습을 담은 영화이야기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사는 카카 무타이 형제. 달걀을 살 돈이 없어 까마귀 둥지안의 알을 훔쳐 먹어 ‘까마귀 형제‘라 불리는 형제는 아직 어린 탓에 가난의 의미를 크게 느끼지 않으며 밝게 살아간다. 어느 날 까마귀 둥지가 있던 공터가 헐리고 그 자리에 피자가게가 들어선다. 인기스타 삼부가 오픈 행사에 참석해 먹는 피자를 보며 피자를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처음 보는 모양에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도는 피자의 가격은 300루피. 학교도 다니지 않고 철길에 떨어진 석탄을 주워 겨우 10루피를 버는 형제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인도 국가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에 따르면 2011/2012년 빈곤층 비율이 총 22%에 달한다. 다섯 식구가 약 10만 원 이하로 한 달 생활할 경우 빈곤층으로 분류되는데 1인당 하루 최저생계비 기준은 도시 지역은 33.33루피, 교외지역은 27.20루피로 설정하고 있다.(1루피는 약 20원) 빈곤층은 최근 7년간 빠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 인도에서 슬럼가 거주민은 9천만 명에서 1억 명 정도로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전체 도시인구의 25%를 넘는 비율이다.      


절망에 빠진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피자전단지를 보며 비슷한 재료들로 피자모양의 음식을 만들어주지만 아이들이 예상한 맛이 아니다. 형제는 30일만 노력하면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생각에 ’무모한‘ 도전에 나서고 ’과일주스‘ 아저씨의 위험한 협조 덕에 300루피가 채워진다. 하지만 형제는 영문도 모른 채 문전박대를 당하고 더러운 옷이 그 원인이라 생각에 더 돈을 모아 새 옷을 차려입고 피자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찾아갔지만 이번에는 손찌검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아이들을 가로막았던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빈민가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차별과 시선이었던 것이다. <기생충>에서 가진 자들과의 선을 그어주던 ’냄새‘와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까마귀 형제를 가로막은 것이다. 설상가상 축 쳐진 어깨로 돌아온 아이들을 맞은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빈민가의 삶은 철저하게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후반부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버무려져 있지만 불합리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구치소에 있는 아버지를 보석으로 나오게 하려는 엄마의 시도는 부족한 돈 앞에서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피자를 먹지 못해 남은 형제의 돈은 부족한 장례비용을 닦달하는 남자들에게 지불되고 부잣집 아이는 먹다 남은 피자조각으로 선의(?)를 베풀려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마을아이의 처지를 동네 청년은 돈을 한몫 챙길 기회로만 활용하고, 정치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상황을 십분 활용한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의 욕망에 쓴 웃음을 보이는 것은 두 형제다.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사장은 아이들을 초청해 피자를 대접한다. 돈을 내지 않아도 먹을 수 있게 된 피자. 평생 제공하겠다는 따뜻한 피자를 사장이 직접 입에 넣어주지만 피자의 맛은 아이들이 상상한 맛이 아니다.   

   


“너 맛있냐?”

“아니, 느끼해. 할머니가 만들어준 피자가 더 맛있어.”     

영화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끝나지만 앞으로 이들 형제가 행복하기 위해 남은 날들은 300일 수도, 3000일 수도, 아니면 더 긴 시간일지 알 수 없다.      


아이들에게 달걀대신 영양을 채워주던 까마귀 둥지를 없애고 마을에 들어선 피자가게는 전형적인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가게다. 두툼한 도우에 토핑이 잔뜩 올라가 있는, 전 세계가 비슷하게 향유하고 있는 피자다. 1905년 맨해튼 스프링 가에서 문을 연 최초의 피자가게 ‘롬바르디’를 거쳐, 1954년 셰키스(Shakey’s)를 비롯해 1958년 피자헛(Pizza Hut), 1959년 리틀 시저스(Little Caesar’s), 1960년 도미노 피자(Domino’s Pizza)로 번져나간 형태다. 얇은 반죽 위해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료만 검소하게 올려놓은 노동자, 혹은 이민자를 위한 피자가 아니다.     


   맛있는 것에 대한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다. 문제는 그 욕구를 뒤틀린 욕망으로 부풀리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지휘하는 자,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에 있다. 불행은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얻으려는 과도한 욕망, 혹은 강요되고 조작된 욕망의 유혹에서 비롯된다. 맞서고 항의하기보다 현혹하고 빼앗는 것에 어른들은 길들여짐으로써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돼지가 되어간다. 이게 왜 맛있지 않느냐며, 느끼하지만 달달한 맛을 강요하는 이들에게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영화는 아이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야생의 풀에 불과했던 밀(triticum aestivum)은 1만 년 전 수렵 채취인들의 손에 곱게 빻아져 빵으로 만들어지고, 쉽게 이삭이 떨어지지 않았던 돌연변이가 인간의 손에 길들여짐으로써 오래도록 인류의 생존과 함께 해왔다. 이제 인간(혹은 자본)이 인간을 길들이는 세상을 바라보며 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맛에는 단맛, 쓴맛, 신맛과 같은 다양한 맛이 섞여 있다. 그 맛이 각자의 느낌에 맞게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저런 맛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맛만 맛있다는 범주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는 단맛만이 ‘맛있는’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할 일은 맛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서부터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기본 피자 10가지 메뉴의 재료를 모두 알고 있어 메뉴판에 따로 적어 놓지 않는다고 한다. 맛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다.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나폴레타나: 토마토, 안초비, 모차렐라, 오레가노

마리나라: 마늘이 들어간 토마토소스만 칠해놓은 피자

카프리초사: 모차렐라, 버섯 카르초포, 프로슈토, 코토, 올리브, 오일

로마냐: 토마토, 모차렐라, 안초비, 오레가노, 오일

콰트로 스타조니: 재료는 카프리초사와 비슷하지만 섞어서 얹지 않고 피자 표면을 4등분으로 나누어 배치한 것.

디아볼라: 토마토, 모차렐라, 매운 살라메, 오레가노. 오일

콰트로 포르마지: 포로볼로네, 파르미자노, 그로비에라, 페코리노

네가지 치즈가 들어간다.

시칠리아나: 검은 올리브, 녹색 올리브, 알리체, 케이퍼, 카초카발로, 토마토

마르게리타: 토마토, 모차렐라, 오레가노 또는 바질

오르톨라나: 모차렐라, 가지, 피망, 마디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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