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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an 08. 2020

전장의 애환을 달래준 와인, 피나르

일용할 작은 상식이야기


요즘은 입대한다고 친구들과 코가 삐뚤어져라 술을 마시는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꼰대가 되어버린 나이의 어른들이야 입대를 앞두고 한동안 알코올에 절어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은 조용히 친구나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쪽으로 바뀐 것을 주변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더구나 소주나 막걸리가 대부분이던 모임에서 비록 저렴하지만 와인을 놓고 주고받는 풍경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스마트폰과 자유로운 소통이 보장된 군대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당혹스런 모습만도 아니리라 느껴진다.    


프랑스 와이너리 Château du Clos de Vougeot는 2018년 9월15일부터 2019년 3월31일까지 재미있는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100 주년을 맞이해 개최한 ‘Le Pinard Des Poilus - Quand Madelon Chantait(병사들의 피나르, 마들론이 노래할 때)’라는 전시회였는데 과거를 추억하는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들로 눈길을 끌었다.     


피나르는 전쟁을 기억하는 프랑스 남성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와인이다. 프랑스의 일반 병사,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병사를 푸엘루(poilu)라고 부르는데 자주 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털북숭이 남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마시던 평범한 레드 와인을 피나를라고 부른다. 이 단어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은데, 1880년대 초부터 사용되었던 루아르 계곡에서 잘 쓰이던 언어로 피노 누아(pino noir)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중에 군대에 보급된 와인은 사실 피노 누아가 자라지 않는 지역으로부터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속어를 루아르 출신의 병사들이 주로 사용하면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피나르는 병사들에게는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생필품이었는데 아빠 피나, 또는 성(saint) 피나르라고 부를 정도였다니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병영에서 술은 금기시되는 품목이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고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기간이고 프랑스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100년 전으로 잠깐 돌아가 보자.    


1차 세계대전 발발 초기 랑그독-루시옹의 와인 생산자들이 군 병원에 나눠주기 위해 2천만 리터를 기부했다. 병원에서는 와인이 부상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치유와 회복을 촉진시킨다고 믿고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의학적 관점에서는 와인이 건강에 이롭고 치료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동안 벌어진 금주 캠페인에서도 증류주(liquor)를 문제로 보았지 와인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일부 군 지도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몇몇 국방장관들은 군인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에 반대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유럽 군대들은 알코올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16일간 3만6천회의 사격을 실시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독일의 한 조사는 술을 마신 병사들과 그렇지 않은 병사들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 사격술이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이와는 다르게 프랑스 군은 술을 마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효율성을 비교하는 대신, 맥주와 와인의 효과에 대해 비교하는 재미있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와인이 맥주보다 사격술에서 영향이 좀 덜하다고 결론을 냈는데, “와인을 마신 병사들이 덜 피로했고, 길을 따라 걸으며 노래를 불렀지만 맥주를 마신 병사들은 발걸음이 무겁게 행진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는 과학적인 사실보다는 애국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지휘관들은 맥주를 마신 독일 병사들과 그들의 부하들이 싸워야 한다면 조금 더 이점이라도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해석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에는 와인이 군대에 해롭지 않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인들에게 긍정적인 이익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Revue de viticulture>의 편집자이자 국립농학연구소 포도재배학 교수인 피에르 비알라(pierre viala) 같은 경우에는 전쟁이 지지부진하던 1916년 와인이 ”건강과 치유, 소화를 돕고, 기생충에 대항하고, 신경계를 약동하게 한다. 와인을 마시는 군인들은 덜 피로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지속적인 군사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휴가기간이나 주요한 작전, 그리고 강력한 육체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 있을 때는 지휘관의 재량으로 와인이 주어졌지만, 1914년 이전까지는 프랑스 군에는 매일 주어지는 와인 배급이 없었다. 그러나 1914년 전쟁이 시작되고 두 달 후부터 병사들에게 매일 250ml씩의 와인이 배급되었다. 이후 군대의 일일 와인 배급이 500ml로 증가하자 생산지역에 대한 와인 징발도 늘어났다. 1918년에는 전년도의 폭동을 감안해 배급이 750ml로 늘어났고 병사들은 지원금으로 같은 양을 더 구매할 수도 있었다. 한 군용 요리책에는 1리터의 와인, 1리터의 물, 설탕, 그리고 부순 빵으로 만든 “비뉴롱 수프”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와인이 허용된다고는 하지만 적정 수준은 있어야 한다. 하루 1리터의 와인(당시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10~11도가 일반적)은 병사가 임무를 수행하는데 괜찮은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루에 1리터의 와인을 초과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권장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군 당국은 절도를 하거나 상관을 모욕하는 것과 같은 다른 범법으로 악화되지 않을 경우, 술 취한 자를 거의 기소하지 않았다. 아담 지넥(Adam Zietnek) 교수에 따르면 전쟁 기간 동안 군 당국이 군기문란을 일으키지 않되 병사들을 행복하게 하고 전투를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와인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려 애썼는데 500ml와 1리터 사이에 있다고 설명한다. 와인병이 750ml로 정착한 것에 대한 여러 설명들이 제시되는데 이것도 그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한편 배급된 모든 와인은 레드였는데, 병사들의 피에 정열을 주입하고 심장에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화이트 와인보다 남자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각각의 장점에 대한 논쟁이 1916년 하원(Chamber of Deputies)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논쟁은 각각의 와인들의 가격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몇몇 의원들은 군대에 공급하는 화이트 와인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전쟁기의 삽화는 종종 병사들과 피나르를 함께 묘사한다. 한 만화는 병사가 지나가면서 피나 배럴 통에 경레하는(saluting)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 전쟁 시기 포스터는 시민들에게 우리의 병사를 위해 당신의 와인을 저축하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피나와 관련한 찬가(hymn)도 있을 정도다.     


연말과 연초를 맞아 와인 추천 글들이 심심찮게 SNS에 올라온다. 더러는 귀한 와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와인리스트를 올리기도 했지만, 더 호응을 얻은 것은 유명 유통회사가 1백만 병이나 수입해 가격이 놀랍도록 저렴했던 와인이다. 가성비만 따진다면, 자주 이용할 만한 와인이다. 올해도 지갑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그 옛날 전쟁터의 벗이 되었던 피나르처럼 아끼지 않고 마실만한 와인 한 두가지 옆에 두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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