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와인 생활
프랑스 와인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며 읽은 원서 한 권의 번역을 최근에야 끝냈다. 출간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부를 위한 목적이었던 관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이 일 년 남짓 걸렸다. 다시 읽어가며 거친 표현들을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끝내고 나니 나름 뿌듯하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번역서 편집을 해보고도 싶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인 것 같다.
코로나로 세월이 하수상하다 보니 내용을 수정하는 와중에 질병과 관련된 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기 전 적어도 프랑스에선 와인이 꽤 훌륭한 치료제로 쓰인 모양이다. 기독교에서 그 상징성으로 차지하고 있는 비중 외에도 와인은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 년 넘도록 이어진 신체 체액이론에 대한 신봉이 와인에게도 그 위치를 보장해 준 것이다.
체액 이론은 사람 몸속의 네 개의 신체적 액체, 즉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 개인의 기질과 건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체액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방해받을 때 사람들은 병에 걸리게 되는데, 체액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방법으로 이것을 치료하면 평정한 상태가 된다고 보았다. 혈액은 따뜻하고 촉촉함을, 황색 담즙은 따뜻하고 건조함을, 흑색 담즙은 차갑고 건조함을, 점액은 차갑고 촉촉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 의사들은 질병이 있는 경우에 적절한 관계가 훼손되었다는 신호라고 보고 균형상태로 체액을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래서 열이 나거나 땀이 나는 환자에게는 열과 수분을 감소시키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의사들은 특히 모든 음식과 음료가 인간의 건강과 연관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모든 음식과 음료는 체액의 특징에 따라 연결되었는데 일부는 따뜻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반면 다른 것들은 차가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음식 스스로가 이러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음식들을 먹었을 경우 신체가 음식으로 하여금 체액 중 하나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렇게 해서 몸에 대한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저작이 프랑스에도 번역된 14세기 피렌체의 의사 Michele Savonarola는 체온의 차이가 와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와인은 따뜻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이미 “뜨거운” 상태인 젊은이들은 와인을 마시지 말라고 경고했다. 반면 노인들의 경우에는 신체가 자연스럽게 차갑게 되는 경향에 와인이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권장했다. 일부 의사들은 와인을 구별했는데, 도수가 높은 와인은 매우 따뜻하고 영양분이 많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클라레는 산미와 저 알코올이 “따뜻함”과 영양이 덜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의사들은 고 알코올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지 말 것을 경고했는데 체온을 위험한 단계까지 상승시키고 욕정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와인은 성적 욕망에 대한 특별한 우려가 있었고, 특히 달콤한 와인과 고기가 에로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에 대해 의사들이 걱정하는 음식이었다. 중세 성지 순례단에게 도수가 높은 와인을 마시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와인이 당신이 피해야만 하는 성행위의 유혹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수가 높은 와인이 임신을 돕는데 사용되기도 했는데, 후추와 생강으로 양념을 하고 와인에 담근 숫짐승 고기와 암 비둘기로 만든 파테(밀가루 반죽)가 권장되었다.
중세 의사들은 와인을 특정 질병이나 상태를 다루는데 광범위하게 이용했다. 14세기 프랑스 외과의사 Henri de Monedville은 와인이 혈액에 이롭다고 강조했다. 화체설 교리를 평민들을 위해 재해석한 글에서 Monedville은 와인이 혈류에 직접적으로 들어가 곧바로 피로 변형되기 때문에 와인이 혈액을 생성하는데 최선의 음료라고 썼다. 그러면서 와인과 우유를 둘 다 마시는 것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지 와인만 마시는 사람은 불그레한 혈색을 가지고 우유만 마신 사람은 창백해지지만 두 음료의 적절한 균형은 이상적인 혈색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당시 와인은 약의 기본제재로 처방했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성분을 효과적으로 녹이기 위해 끓여서 사용되었다. 와인은 다른 약제의 흡수를 촉진하는 수단이었다. 마비환자는 화이트 와인에 알로에 나무를 갈아 넣어 먹였다. 부종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아이리스와 백합 뿌리를 막자사발에 넣어 으깨 와인과 함께 마셨다. 협심증으로 고통받는 이는 개의 흰색 배설물을 말리고 분쇄해 따뜻한 화이트 와인과 함께 마셔야 했다. 이질이 심한 사람에게는 와인을 증발시켜 이용했다. 타일이 붉어질 때까지 열을 가한 뒤 그것을 대야 안에 두고 와인으로 덮었다. 그 대야를 앉는 자리에 구멍을 낸 의자 아래에 두었고, 벌거벗고 의자에 앉아 그 증기를 흡수하도록 했다. 습포제를 사용하기 전에 피부를 닦는 데도 권고되었다.
프랑스 의사들은 우유, 식초, 오일, 오줌을 포함한 다른 액체를 약처럼 사용했지만 와인을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와인이 치료나 완화할 수 있는 질환과 조건에 한계는 없었다. 뱃멀미, 출산, 팔의 염증, 농양, 우울, 변비 등에 무수한 문제에 와인이 포함된 처치가 권장되었다. 와인은 또 매년 특별한 시기에 어울렸기 때문에 선택된 것 같다. 의사들은 여름에는 좀 더 약한 와인을 마시고 기온이 더 더워지면 물을 첨가하도록 했다. 겨울에는 더 강하고 향긋한 와인을 권했는데 특히 차갑고 안개 낀 날 아침에 외출할 경우 마시도록 했다.
폴리페놀 성분으로 한 잔의 레드 와인을 식사와 곁들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와인 애호가에게 널리 퍼져있는 사실이다. 만병통치약처럼 곁들여 지던 중세의 와인만큼은 아니라도 건강을 지키는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준다면, 와인을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도 더 즐거울 것 같다. 힘겹게 전염병의 시기를 건너가야 하는 인류에게 따뜻하고 붉은 한 방울의 포도주가 곁에 있는 시간이 가끔씩이라도 자리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