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뿐인숲 Apr 13. 2020

나무의 결, 마음의 결

플레이팅을 위한 도구들이 인기를 얻으며 도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목공방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 도마라고 하기도 하고, 목공 체험에서도 도마 만들기가 가장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리에 취미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월넛이나 메이플로 만든 근사한 도마 하나쯤 가지고 있는 집이 많아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엔드그레인 도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엔드그레인(End Grain) 도마는 나무의 나이테 면이 일부분씩 위로 드러나도록 이어 붙여 만드는 도마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도마가 통나무를 수직방향으로 켜, 그대로 재단하는 종단면 페이스 그레인(Face Grain) 도마인데 비해, 엔드그레인 도마는 나이테 면을 수직 배열해 사용한다. 종 방향으로 뻗게 되는 수관과 섬유질의 미세한 기공들을 통한 탁월한 배수성과 통기성 때문에 위생적인 사용이 가능하고 뒤틀림과 휨 현상이 줄어든다. 나무를 이어붙이는 작업이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격도 비싼 편이다.    

 

마치 체스판을 연상시키는 엔드 그레인 도마의 독특한 외관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구를 만들거나 목재를 다루는 목수들에게 엔드 그레인은 가급적 노출하기 꺼리는 무늬다. 대다수가 여러 개의 둥근 원을 일부분만 잘라 놓은 듯한 모습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무늬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나뭇결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목재를 분류하는 용어에서는 위치와 형태, 기능에 따라 50 여개 넘게 나누기도 한다. 원목을 제재하는 방법에 따라 종방향 나뭇결(long grain)과 횡방향 나뭇결(End Grain)로 나뉜다. 나무를 수평으로 자르면 나타나는 나이테가 보이는 무늬를 엔드 그레인(End Grain)이라고 부른다. 목재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마구리면이라고 불리는 면이다. 그리고 종방향 나뭇결은 다시 곧은결(Quarter Grain)과 무늿결(Plain Grain)로 나뉜다. 어떻게 나무를 켜느냐에 따라 결은 다른 모습을 취한다.     


쿼터 소운(Quarter Sawn) 방식으로 제재한 경우 드러나는 나뭇결을 곧은결이라고 부른다. 목수들 사이에서는 일본 용어로 마사메(まさめ)라고도 한다. 생산비용이 고가이지만 목재가 원 형태로 잘 보존되어 무늿결 제재방식에 배해 수축이나 뒤틀림 등에서 2배 이상 우수하다. 수율(제재를 통해 실제 활용되는 비율)이 낮아 가공비는 더 비싸다. 곧은결은 평행한 직선형의 나뭇결이 특징인데 뒤틀림, 배부름 등 변형이 적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우리가 흔히 인테리어용 시트지를 구매하면 보게되는 무늬는 대부분 곧은결 모양에 기준을 두고 만들어진다.     


이와 달리 플랫 컷(Flat Cut) 방식으로 제재한 경우에 드러나는 나뭇결을 무늿결이라고 부른다. 일본식 용어로는 이다메(いため)고도 한다. 아마도 우리가 나무 무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무늬로, 물결무늬가 펼쳐져 있는 나뭇결을 말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데 나무를 켤 때 목재 손실이 적어 곧은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제재방법이다. 대신 변형이 많다는 점이 아쉬운데 특히 얇고 넓은 판재일수록 휨, 배부름, 뒤틀림 현상 발생 확률이 높다.     


나무의 결을 들여다보고 만지면서 느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아름다운 결일수록 나무의 수많은 방황의 흔적들이 쌓인 것이라는 것이고, 그 결이 보는 방향에 따라 참 다양하게 보이고 나눠진다는 것이다. 계절을 따라 차곡차곡 춘재와 추재가 겹쳐지면서 나뭇결을 형성한다. 단순히 횡단면을 절단하면 나이테로만 보이지만 세로방향으로 자르면 그제야 나무의 황홀한 결, 고통의 과거를 느낄 수 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견디고 이겨낸 사람일수록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을 테니.      


쉽사리 이 나무의(사람의) 결이 이렇다 저렇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물결치거나 크고 작은 원이 펼쳐지는 면이 있는가하면 기다란 선으로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이어지는 면도 있다. 어디를 드러내느냐에 따라 결은 달라진다. 아름다움은 감춰져 있기도 하며 들여다보려 하는 노력에 따라 그 속내가 결정되기도 한다. 내 주변 사람의 무늬는 어떤지, 한쪽 면만 봐온 것은 아닌지, 나의 무늬는 어떤 모양일지. 도마 하나 만들어보려다 많은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질병 치료제로도 쓰인 포도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