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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un 18. 2020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

 “그것 말고 고기를 먹으라고.”

핀잔을 듣고서야 타버린 내 앞의 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산소를 내려오면 나이 든 남매들이 함께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사느라 바쁘고, 주로 평일에 기일이 돌아오는 까닭에 산소 근처 정육식당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장소가 되었다. 빠듯한 하루 탓에 그렇게 밥 한 끼 나누며 근황을 묻고 각자의 사는 곳으로 다시 흩어져 온지 십 년이 되었다.      


불판에 올라온 소고기 대신 반찬으로 뚝배기에 실려 나온 계란찜만 휘적거리고 있는 동생이 거슬렸을까. 고기를 잔뜩 넣은 쌈을 건네주는 누나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고기 굽는 열기에 실내는 바깥과 별 차이가 없다. 아버지는 그렇게 더위의 시작을 우리에게 매년 알려준다.       


   


새벽 네 시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보다 귀가 먼저 떠졌다. 낡은 이불 옆으로 밥상이 차려지고, 숟가락이 그릇과 부딪치는 소리가 잦아들 때쯤 눈을 부비며 잠을 깼다는 신호를 보냈다. 살이 부르튼 낡은 가죽 가방을 손에 들고, 짙은 청색 셀로판테이프처럼 반짝거리는 바깥을 향해 아버지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다.녀.오...세요.” 아버지의 등에다 헐거운 인사를 던지면 늘 특유의 “어.”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문으로 걸어가셨다.      


습관이었는지 배려였는지 아버지는 자주 밥을 남겼다. 시골학교로 출근하는 아버지가 시외버스 첫차를 타는데 늦지 않도록 어머니는 항상 어둠 속에서 먼저 쌀을 씻었다. 양철 냄비에 담긴, 잡곡이 섞이지 않은 찰진 쌀밥은 그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잡곡을 혼용하자는 공익광고가 아니어도 쌀밥만 먹는 것은 부잣집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쫓기듯 고향을 떠나 대도시 주변부에 두 칸짜리 방을 얻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주 일산화탄소의 위협을 받았고, 가로등도 드문드문 꽂혀있는 골목길의 무서움에 자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는 밥을 짓던 냄비 속에 계란 한 개를 푼 스테인리스 그릇을 함께 넣어두셨다. 냄비 속을 요동치던 뜨거운 열기가 계란을 스펀지처럼 촉촉하게 만들었다. 몇 가지 올라오지 않던 반찬이 계절마다 바뀌었어도 계란찜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이른 새벽 혼자만의 식사시간. 공복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밥을 욱여넣는 일은, 배고픔보다 다섯 식구를 위해 살아남기 위한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일어선 자리에는 절반이나 남은 찰진 쌀밥과 계란찜이 나를 기다렸고, 어머니는 막내가 물을 말아 깨끗이 밥을 비우는 동안 연탄불을 살피러 부엌으로 내려가셨다.     


지금껏 새벽잠이 별로 없는 이유가 그 탓만은 아니었겠지만, 유년의 습관은 문신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몇 년쯤 후 아버지는 사택이 있는 학교로 전근을 가셨고, 그곳에서 홀로 밥을 지어 드셨다.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전기밥솥이라는 신문물이 우리 집에도 들어오며 냄비밥과 계란찜을 맞이하는 새벽은 슬며시 사라졌다.

     

유품이 정리되던 날 아버지가 남긴 몇 가지 추억을 고향 집에서 가져왔다. 낡은 성경을 챙긴 아내와 붓글씨로 마저 다 채우지 못한 화선지 두루마리를 챙긴 딸아이 뒤에 서있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스테인리스 밥그릇이었다.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 노모가 식혜를 만들 때면 엿기름과 설탕을 계량하는 용도로나 등장하던 물건이었지만 내게는 아버지의 숟가락으로 그린 풍경이 남아있는 그릇으로 보였다. 무엇하러 그걸 가져가느냐고 하시다가 슬며시 내어주던 어머니는 계란찜을 익히던 그 새벽을 기억하셨을까.     


세상 살아가는 근심으로 뒤척이다 일어나는 새벽이면 아주 가끔 가족을 위한 밥상을 준비하고는 한다. 자취생활 덕분에 된장찌개 정도는 끓일 줄 안다. 그리고 매번 상 위에 함께 올려놓는 건 계란찜이다. 연탄불도 아니고 냄비로 지은 밥도 아니라 보글보글 밥물이 흘러넘친 계란찜을 맛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냄비에 따로 물을 넣고 중탕으로 익혀내는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달걀을 깨 휘젓고 소금 간을 하고 불 조절을 하며 삶의 절반을 침묵으로 채웠던 아버지와 늦은 대화를 나눈다. 냄비 뚜껑을 넘겨버릴 듯 부글거리는 수증기 소리는 삶 곳곳에서 뜨거움을 견디며 내뱉던 나이 든 아저씨의 짙은 한숨으로 들린다. 아버지는 그 뜨거움을 세상에 토하는 대신 계란을 익히는 심정으로 몸속에 돌려보내며 살다 가신 건 아닐까.       



코로나로 싸늘해진 사람들 머리 위로 다시 더위가 시작되었다. 어둠은 아직 채 풀리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으로, 과제로 밤늦게까지 책상에 머물다 잠든 아이들을 바라본다. 다시 잠들긴 힘들 것이고 부엌으로 한 번 가봐야겠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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