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을 나누는 철 지난 영화 두 편
혀가 느끼는 맛이 다섯 가지로 고정되어 있다고 보면, 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수많은 꽃과 과일, 자연물에서 번지는 독특한 향은 우리 일상에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혀가 코만 못한 것은 아니다. 질기고 부드러운 촉감은 코가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감각의 세계다. 그래서 향기로운 맛은 가족(반드시 생물학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같은 존재다. 하나가 고장 나면 다른 한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관처럼 말이다.
<오 브라더 오 시스터>에서 조향사 스스무가 결국 찾은 ‘감사의 향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누구든 맡을 수 있는 향이었을 것이다. 표현하거나 특정할 수 없는 향기는,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의 불행은 자신의 철없는 행동 때문이었고(눈을 가리는 바람에 넘어져 앞니가 부러졌다) 동생의 불행은 못난 자신이라는 존재 때문이라는(독특한 외모로 연애조차 힘들다) 두 사람의 자책은 서로를 배려하는 것으로 이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을까 해서 하지 못하는 상황. 누나의 존재가 실연의 원인이 된 스스무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순탄치 않다. 동생이 자책하지 않을까 싶어 외모를 다듬을 엄두를 못 낸 요리코는 사랑에 도전하지 못하는 슬픔을 겪는다.
"자신의 행동이 진정한 친절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무를 좋아하게 된 카오루가 쓴 동화 속 내용처럼 두 사람은 결국 도전에 실패하고 돌아온 후에야 서로를 위한 진정한 배려가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두 사람이 찾아야 할 향기는 간직하고 있었지만 잊고 지냈던 자신들의 향기였다. 비록 늦었다 할지라도.
태양을 없애면 네가 사라져 버려. 그리고 네가 없으면 밤에 사람들은 길을 잃고 말 거야. 중요한 건 네가 빛을 받아서 너는 또 누군가를 비추는 거야.
오노데라(小野寺) 남매의 단독주택이 씁쓸하지만 건강한 향기로 가득한 곳이었다면, <해피 해피 브레드>의 무대 ‘카페 마니’는 담백하고 정겨운 맛이 넘치는 곳이다. “평범한 빵도 맛있다”라고 말하는 이에는 도쿄를 떠나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 중이다. 어제저녁은 융드립으로, 오늘 아침은 이브릭으로 내린 커피를, 남편 미즈시마가 만든 평범하지만 맛있는 빵과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웃고 싶지 않은 날도 웃을 때가 있지만 부부는 커피와 빵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슬프지 않다. 잘난 남자 친구에게 바람맞은 도쿄 여자와 시골을 떠날 꿈조차 꾸지 못하는 남자, 도망간 엄마로 인해 마음을 닫은 아빠와 딸, 마지막을 함께하는 시한부 아내와 남편 등 카페를 찾아온 손님에게 길을 열어준다.
“함께 울고 싶었어.”
엄마의 호박스프를 잊지 못하는 아이와 아빠에게 차려준 저녁 식사에서 아이가 정말 원했던 것은 슬픔에 함께 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부인을 위해 함께 죽을 결심을 한 노인은 그곳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묵묵하게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생 빵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빵도 맛있네”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사람은 매일매일 변하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준비하게 된다.
맛있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추억, 누군가와 함께 한 기억이다. 혀가 이끄는 감각과 코가 반응하는 자극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주고받으며 나누는 기억이 향기로운 맛을 완성한다. 지금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어떤 맛과 향을 나누고 있는지 물어보게 되는 휴일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