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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ul 16. 2021

한여름 밤의 풍경

    


# 소나기가 그친 아홉 시. 대자리 위에 누워 아이들과 ‘별이 진다네’를 듣는다. 열두 시가 넘어도 자연이 선물한 빛의 흔적을 찾기 힘든 도심에서 각자의 별을 추억한다니. 멀리 개구리와 풀벌레 울음이 4차선 도로의 간헐적인 소음과 왈츠를 춘다. 같은 음악으로 다른 추억을 상상하는 시간만으로, 조금 더워도, 바람 없어도, 우리는 잠들 수 있다. 별은 늘 가슴에서만 지는 법이니까.     



# 좋은 소리를 듣겠다고 자주 오디오 기기를 교체하고는 한다. 다른 조합의 스피커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 부르거나 연주하는 순간과 동일한 음을 재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때인가. 해상력은 실제 연주와 일치하지 않는다. 실물이 사진보다 더 또렷하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최적의 조합이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 바꿈질이 멈추는 순간은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 꼬박꼬박 약을 먹는다. 병원을 다녀오면 누구에게나 이어지는 엄숙한 절차. 더위 탓인지 약 탓인지 자꾸 존다. 먹는 약, 바르는 약, 뿌리는 약. 살아가는 일은 약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정이다. 혈관 속 일부는 시차를 달리하며 이름을 바꾼 약물로 흠뻑 젖어 있을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없다. 나빠진 몸을 도와주는 약이 있을 뿐. 병이 있고 난 후에야 약은 의미를 얻는다. 필요 없으면 좋을 텐데, 또 그렇게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 젊었을  부른 노래를 나이 들어 다시 부르는 모습이  깊은 느낌을  때가 있다. 한음 한음을 또박또박 내려는 모습, 호흡은 살아있으되 소리는 끝까지 차오르지 않는 순간,  보여주는 많은 변화, 그제야  노래가 자신의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모든 가수가, 그의 노래가 그렇지는 않다.  노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노래가 소환하는 추억 때문이 아니라, 오래전 그날을 떠올리며 구현되는 오늘의 음들이 나이 들었음을, 그럼에도  나다움을 확인하는 지금 때문이다. 낡음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완성된다.      



# 인터넷에 올려  음악을 들으며 기뻐하던 누군가가 있었다. 감춰둔 곶감처럼 매일 빼먹는다던,  알씩 털어 넣는 알약 같다던  사람은 오래전 별이 되었다. 치료제보단 영양제처럼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없으면  되는 사람보다 있으면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존재다. 별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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