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뿐인숲 Feb 22. 2022

어떤 기억



1.

이십 년이 얼추 되어 가는 자동차를 얼마 전 떠나보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함께 했던 차다. 이름까지 지어주고 일상을 공유하던, 마치 가족 같던 차다. 비슷한 경우가 흔하겠지만 유독 한 물건이 완전히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좀처럼 이별하지 않는 우리 집에는 적어도 아이들의 나이 정도 되는 물건들이 제법 된다. 자리를 접어 눕기도, 여러 명이 타기도 더없이 편안하던 밴은 이동수단이자 쉼터였다.     


겉모양은 세차만 하면 멀쩡해서 십 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후 환경을 위해 포기하기로 했다. 다른 곳으로 팔려가지 않고 조용히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차에 남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이패스를 철거하고 플러그와 소지품을 모두 비닐에 담았다. 장바구니, 세차용품, 담요, 언제 먹다감 남겼는지 모를 생수병까지.   

   

가끔씩 혼잣말이지만 말을 걸며 운전을 하기도 했다. 생명 없는 물건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소통하는 마음인지, 그냥 집착일 뿐인지 잘 모르겠다. 폐차를 앞둔 시기 동안 시내만 조심스레 운전하고 다녔다. 타이어도 많이 닳았지만 새 신발을 사줄 필요도 없었다.       


마지막 운행을 하고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특별한 잔 고장 없이 잘 버텨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표했다. 눈물이 많은 딸은 어김없이 마지막 순간에 울었다. 모든 헤어짐은 슬프다. 슬픔을 다독이는 것은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이 새로운 사랑으로 잊혀가듯, 서서히 잊혀갈 것임을 그렇게 믿는다.     



2.

“다음엔 설에 오겠구나?”

정월대보름이 다음 날이었는데 어머니는 설이나 되어야 다시 보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코로나 간접 접촉 때문에 귀성하려다 급하게 취소해야 했던 사실을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배를 하지 못했고 2주 뒤에야 늦은 방문을 했지만 어머니는 아직 설이 멀었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손주가 다녀가야 설이었을 테니 시간의 공백을 어머니는 채울 길이 없었을 것이다. 설이 지났다고, 생신 때나 내려올 것이라고 몇 번 설명을 하다 결국 그렇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반복되는 질문을 견디려면 힘을 아껴야 했다.     


나이 들면서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 구나를 많이 느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듯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며 사는 게 인간이다 싶다가도, 나의 기억과 당신의 기억이 다를 때 느끼는 감정은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해가 지면 멀리 있는 노모에게 전화를 건다. 익숙한 간격으로 연결음이 끝나고 누군지를 묻는다. 대화의 시간과 내용은 늘 일정하다. 내가 오늘도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셨는지, 무얼 드셨는지, 아픈 곳이 없는지를 물으면 어머니는 밥은 먹고 사는지, 모든 게 잘 될 테니 열심히 살라는 당부로 끝이 난다. 어차피 더 이상의 정보는 어머니에게 기억되지 않는다. 조금 머리가 맑은 날에는 몇 년째 손녀가 내년에 졸업하는지, 언제 오는지 정도의 질문이 추가될 뿐이다. 3, 4년 전부터 시간은 어머니에게 흐르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도 조금씩 잃어가는 중이다. 어머니 입장에선 과거의 사실을 배워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먼저 어머니를 떠날지, 기억을 남겨두고 어머니가 떠날지 알 수 없다. 단 한 줌의 기억 조각이라도 움켜쥐고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기억은 남겨진 자의 몫으로 남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더 이상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로서의 증거를 기억하는 일도 모두 남아있는 자에게 달려 있다. 시간은 기억을 만들지만 기억을 지우기도 한다. 뒤죽박죽 된 시간과 왜곡과 현실 사이에서 어머니는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펼치고, 나는 다만 똑바로든 거꾸로든 엄마의 시간이 어떻게든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3.

자동차 말소 증명서를 온라인으로 한 통 뗐다. 우리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질 것이고, 언제가 우리와 함께 했던 소중한 일들은 세상에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증명서는 출력을 해 서류철에 보관하기로 했다. 실물은 사라졌지만 우리 곁에 있던 어떤 것의 흔적을 종이 한 장으로라도 기억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언제든 변경되어 버릴 테지만, 사용했던 차량 번호를 가끔 사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의 비밀번호 중 일부로 당분간 사용하기로 했다.      


인간들의 수많은 말과 행동은 잊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기억되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간절함. 어쩌랴. 사라지는 순간까지 기억하려 애쓰는 수밖에 없음을.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니까.
사실이 중요한 거야

                                                             영화 <메멘토> 中     

작가의 이전글 살아남은 도시의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