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벼룩시장 부럽지 않은 서울 동묘 벼룩시장
런던과 베를린에서 살면서 가장 좋아하고 많이 다닌 곳이 있다면 바로 포토벨로 마켓, 브릭레인 마켓, 마우어파크 등 그 도시의 벼룩시장이었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비자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었다.
벼룩시장이 좋았던 이유는 시대도 이유도 가격도 밑도 끝도 없이 개연성 없는 수 많은 물건들과,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특히 런던이나 베를린 벼룩시장엔 패셔너블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 뒤죽박죽 얽혀있는 모습들이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한국 친구도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 친구에게서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동묘 벼룩시장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눈에 비친 런던, 베를린의 벼룩시장과 그 친구의 눈에 비친 동묘 벼룩시장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동묘 벼룩시장은 동관왕묘 주변에 형성된 시장을 일컫는다. 동묘의 본 이름이 보물 제 142호인 동관왕묘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럼 역사에 동관왕이라는 왕이 있었나 하며 찾아보니, 동묘는 우리나라 역사의 왕이 아닌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사당으로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왕의 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얘길 듣고 동묘를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하고는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중국의 묘사 건축 형식을 본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하튼 이 동관왕묘 주변에 형성된 동묘 시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6호선 동묘역 3번 출구로 나와 동묘 방향을 따라 걸으면 돌담을 따라 자연스럽게 벼룩시장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의 동묘 벼룩시장은 조선시대에는 4대문 밖에서 채소를 팔던 시장이었는데, 1980년대 골동품상이 한산한 상가를 형성하다 2005년도 청계천 황학동 벼룩시장이 폐쇄된 후 그곳 상인들이 옮아와 자생적으로 벼룩시장이 형성되어 주중은 오후 2시부터,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일몰 전까지 1,000여 개가 넘는 좌판이 진을 펼친다.
동묘 벼룩시장은 앤티크 골동품뿐 아니라 옛날 필름 카메라, 축음기, 라디오 등과 같은 가전제품부터 스웨그 넘치는 구제 패션, 자전거 용품, 등산용품 등 정말 없는 거 빼곤 다 있는 곳이다.
가격 또한 천 원 때부터 몇십만 원 까지 천차만별이지만 벼룩시장에선 흥정이 기본이므로 만 원짜리 대신 천 원짜리를 두둑이 챙겨가 흥정하면 진정한 득템을 할 수 있다.
특히 오래된 필름 카메라나 LP판, 앤틱 그릇 구제의류 등을 구입하기에 제격인데, 나도 얼마 전 가볍게 사용할만한 꽤 쓸만한 중고 필름 카메라를 만팔천 원에 구입했다.
득템도 득템이지만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우아, 이런 게 아직도 있네" 라며 반가워하는 것만으로도 동묘는 너무 즐거운 곳이다.
진정한 득템을 원한다면 주말 장이서는 오전 일찍 찾아 가길 추천한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점심시간 즈음 다리도 아파오고 배가 출출해지면 골목길 안에 있는 '멸치와 국수 이야기'라는 국수집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오래된 한옥 가게인 이곳 에는 국수 한 그릇을 3,000원에 먹을 수 있다. 식판을 들고 김치를 담고 국수를 받아 한옥 마당에서 먹는 국수는 서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착한 가격에 사골국처럼 우린 시원한 멸치국물이 제맛이다.
군것질을 좋아한다면 멸치와 국수 골목 전에 있는 수입과자를 파는 가게나 시원한 수제 오미자와 헛개수를 파는 건강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햇볕이 조금 따스해지는 주말 오늘 뭘 하지?라는 고민이 들면 1,000원짜리를 두둑이 챙겨 동묘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다니다 보면 해가 금방질뿐 아니라 어느새 보물 찾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