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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Aug 21. 2024

함께 둥지를 튼 참새 식구들

초여름 어느 날 아침 유난히 짹짹거리는 아기새들의 소리가 들려 정원으로 나가보니 참새가 지붕아래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둥지 안에는 새끼 참새 세 마리 정도가 입을 벌리고 어미새를 기다리며 울어대고 있었다. 어미참새는 연신 둥지 안과 밖을 날아다니며 바쁘게 새끼들의 먹이를 물어 나르기도 하고 둥지 앞전신줄에 앉아 망을 보며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부터 매일아침 정원을 살피기 전에 참새가족들이 잘 있나부터 먼저 확인을 하게 되었다.



나와 내 짝은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다. 화려한 프로포즈나 결혼식 없이 그간 모은 돈으로 남편의 소망이었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혼자 달리던 마라톤 같았던 삶이 한쪽다리에 끈을 함께 묶고 하나 둘, 하나 둘 호흡을 맞춰 나아가는 이인삼각 걷기로 바뀌게 되었다. 때론 서로의 박자가 어긋나 스텝이 꼬여 넘어지기도 하고, 또 때론 영차영차 함께 구령을 외치며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결혼을 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를 동안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가지지 않은 것인지 못 가진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짝꿍과 나는 소위 말하는 딩크족처럼 아이가 없이 둘이서 살아가는 삶을 원하는 건 아니었고, 언젠가는 아이를 낳자라는 생각은 함께 나누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개학 전날까지 여름방학 숙제를 미루는 아이들처럼 지금은 아니야, ‘언젠가는' 이라며 미룰 뿐.


결혼식 대신 오픈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장인 같은 남편의 성향 탓에 꽤 빠르게 입소문을 타 여기저기 매체에 맛집으로 소개가 되며 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가게를 오픈할 때쯤 새롭게 회사를 옮긴 나도 성과들을 인정받으며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었다. 매일 빠른 속도로 숨쉴틈 없이 돌아가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숨이 차도 전속력으로 계속해서 달리지지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 마냥 가게와 회사를 오가며 멈추지 않는 우리의 레이스는 계속되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 헐떡일 때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러닝머신에서 우리를 강제로 뛰어내리게 한건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도시에 갇힌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며 앞으로 함께하는 '우리의 삶'을 그려볼 때처럼, 오랜만에 숨을 고르고 앉아 우리가 함께 원하는 지속가능한 삶이 어떤 삶인지 깊고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그 긴 고민과 대화의 시간 끝에 우리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바다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려 보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주, 강릉, 목포, 해남, 포항 등 바다가까이 크고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새롭게 둥지를 틀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게 자리를 찾을때도 그랬지만 운명 같은 이끌림의 장소가 생길 거라는 다소 순진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우연한 기회에 너무 대도시라 생각해 후보지에도 없었던 부산에서 작은 바다마을 같은 곳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도시와 자연, 특히 바다가 함께 있는 곳이라 우리에게 딱이다 싶어 지금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새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집 처마에 둥지를 튼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본능적으로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 곳에 다 달아서였을까? 우리에게 적당한 속도를 찾고 건강한 일상을 회복해서 일까? 바다 가까이 작은 정원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고 맞이하는 두 번째 이른 봄에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게 되었다.


헤세의 ‘데미안’처럼 우리는 우리의 알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우리 세계에 함께 둥지를 튼 참새의 새끼들도 알을 까고 나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제법 살짝 불러온 배와 함께 이른 아침 정원에 나가 참새가족들이 잘 있나 확인을 한다. 어미새는 여전히 분주하고, 아기새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울어대며 어미새를 기다린다. 함께 둥지를 튼 참새가족을 응원하며, 작은 정원에 아이를 위해 그네를 달면 어떨까? 여름에는 작은 수영장도 만들면 좋겠다며 남편과 함께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의 둥지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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