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무엇이 될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들. 그때 그리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같은가?라고 묻는다면 그때는 생각도 안 해본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청년을 넘어 중년으로 넘어가는 삶의 페이지가 되고 보니 무엇이 될 거라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나이들어갈까‘ 라는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된다. 평균수명 12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지금 내 나이는 이제 막 아침이 시작된 나이겠지만.
봄은 언제나 무심히도 짧게 지나간다. 언제쯤 봄이 올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꽃잎이 지고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고, 금세 그렇게 또 봄은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인지 ‘봄'이라는 계절을 떠올리면,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하다.
정원 가꾸기 선배인 헤세의 말처럼 정원에서는 모든 생명의 짧은 순환을 다른 어디에서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더 명확하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지난봄 나의 정원에서 빨간색 겹겹의 꽃으로 가장 화려하게 꽃 피운 주인공은 달리아였다. 유럽에서 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달리아. 꽃말이 ‘화려한 아름다움'일 정도로 화려하게 정원 한편에 아름다움을 뽐내던 달리아가 꽃이 질 때는 그 화려함 만큼 참혹했다. 훅 하고 바닥에 떨어진 빨간색의 달리아는 마치 썩은 고깃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어찌나 처연해 보이던지. 그래서인지 블랙 달리아의 꽃말은 ‘배신'이라고 했다.
반면 조팝나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하고 소담하게 아주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아이들도 있다. 좁쌀을 튀겨놓은 듯 작은 흰꽃들이 줄기를 따라 작은 눈꽃송이처럼 피어나는 조팝나무. 이전에 살았던 서울 후암동 뒤편의 남산공원에는 이른 봄이면 조팝나무들이 유난히도 많이 폈는데, 소박하고 하얀 꽃이 너무 예뻐 언젠가 내 정원이 생기면 꼭 심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정원이 생긴 첫봄 정원 담벼락을 따라 가장 먼저 심은 묘목도 조팝나무였다. 이른 봄 수선화 같은 구근 식물들이 피고 나면 담을 따라 하얗게 피어나는 조팝나무 꽃은 웨딩드레스에 수놓아진 자수 같다 생각이 들었는데 영어로는 신부의 화환(Bridal-wreath)이라 불린단다.
조팝나무는 크고 화려하게 눈에 띄진 않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이 오래가는 꽃인데 조팝나무가 지는 모습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고 동그란 하얀 꽃잎들이 봄바람을 따라 포슬포슬 정원의 바닥에 쌓여가는 풍경이 마치눈이 내리는 것 같다.
계절과 함께 무르익는 정원에서 활짝 피어있던 꽃들이 하나둘 지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늙어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느새 흰머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거울의 내 모습을 비춰보며, 잔잔하고 소담하게 그렇지만 하얀 꽃을 오랫동안 피우는 조팝나무 꽃을 떠올려 본다. 눈꽃이 내리는 것처럼 지는 조팝나무 꽃처럼, 백발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로 늙어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