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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Aug 15. 2024

정원, 그리고 삶이라는 작은 우주

“짹짹, 찌르찌르, 까아까아” 정원이 있는 오래된 우리 집의 봄날은 이른 아침 항상 새소리로 잠을 깬다. 하늘엔 더 빠르게 봄이 오고 있지 입춘이 조금 지나고부터 정원의 감나무엔 시시각각 찾아오는 새 손님들로 분주해졌다. 새로운 둥지를 짓는지 나뭇가지를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푸드득 날아가는 새들은 저마다의 봄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매일같이 찾아오는 여러 새의 이름들이 궁금해져 거실 테이블 위엔 한국 조류도감 책도 들이고, 새소리를 녹음하면 어떤 새인지 알려주는 어플도 다운로드 받게 되었다. 우리집에는 주로 까마귀, 맷비둘기, 박새, 딱새, 직박구리 같은 아이들이 찾아온다. 새를 만나고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의 문이 열린것 같다.


입춘 후부터는 매일아침 루틴으로 일어나면 물 한잔을 마시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다음 정원으로 나간다. 봄은 하루사이에도 수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새들 외에도 매일매일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씨앗을 뿌리려 모종삽으로 흙을 파면 어느새 지렁이 가족들이 꿈틀거리고 있고, 겨우내 사라졌던 거미들이 정원 모퉁이 키가 낮은 나무에 바쁘게 거미줄을 치고 있다. 수선화와 양귀비가 필 때쯤이면 꽃향기를 맡고 어느샌가 벌들이 찾아오고, 연둣빛 잎이 나기 시작한 꽃나무에는 귀여운 무당벌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우리 집에는 우리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들, 나비와 벌들, 무당벌레, 거미들, 지렁이들 그리고 작은 미생물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까지. 작은 정원에는 끊임없이 손님들이 찾아온다. 정원에 앉아있으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작은 작은 땅 안에서 생태계를, 작은 우주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정원을 바라보는 그리고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구를 아껴야 한다, 다른 생명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말과 글로만 배웠던 것들이 이제서야 진심으로 피부에 와닿는다. 땅을 기름지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지렁이들,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도와주는 벌과 나비들. 그들은 이 생태계 안에서 각자의 몫을 다 해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던 여러 벌레들과 생명체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반면 인간들은 어떤가?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이란 종족들은 탐욕으로 이 아름다운 행성을 파괴하기에 급급하다. 어쩜 지구에게 해로운 종은 인간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3천 원, 4천 원. 싼값에 마트에 진열되어있는 이런저런 야채들을 그저 돈 주고 사 먹는 하나의 ’ 상품‘으로 대하다가, 나의 작은 텃밭에 토마토, 호박, 상추, 케일 등 여러 가지 야채를 직접 키워보면서도 많은 관점들이 변하게 되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하나의 상품을 쉽게 골라 먹을 때는 알지 못했다. 토마토 한 방울이, 케일 한 장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숨어져 있는 많은 노고들이 말이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애지중지 키운 야채들을 다른 곤충들이 먹어 치우기도 하고, 장마와 태풍에 쓰러져 맥을 못 추기기도 하고, 물이 모자라 시들어 버리기도 하고.


그 과정들을 직접 온몸으로 겪어보며, 나의 관점이 그리고 나의 우주가 변하게 되었다. 작은 곤충들과, 식물들로 인해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이제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의 작은 정원은 그렇게 내 삶의 우주를 바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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