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좌측엔 단감, 우측엔 대봉 이렇게 큰 감나무 두 그루가 터줏대감처럼 서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심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5m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어 1층 거실에 앉아있으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숲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이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열 군데가 넘는 집을 알아보았는데, 지금의 집은 그중에서 맨 처음으로 본 집이었다. 낡고 오래된 집에 휑한 마당이었지만 감나무 두 그루가 멋있게 뻗어있는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고, 결국 지금의 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마당에 큰 감나무 두 그루와 함께 사는 삶은 계절에 따라 해야 될 일이 정말 많다. 10월에 이사해 주렁주렁 달린 감을 수확하는 것부터 시작해, 겨울이 되며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은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 그리고 봄에 새잎이 돋아나기 전 적당한 시기에는 가지치기를, 날이 따뜻해지면 벌레들과의 사투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관리해야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두 그루가 일상에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초록이 주는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크다.
바람이 세차게 많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바다가 지척인 섬에 있다 보니 바람이 거칠 때가 종종 있다. 그날은 손님들이 오면 지내는 2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감나무는 1층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는데 세찬 바람에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터줏대감 같이 늘 굳건해 보이던 감나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요가 자세중 브륵샤아사나로 불리는 나무 자세가 떠올랐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요가를 6년 넘게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요가를 꾸준히 하며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몸이 변했고, 몸이 변하니 마음도 변했다.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유연해지고, 단단하게 근육들이 붙었다. 몸이 견고 해지는 만큼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생각들도 명료해지고 있다.
요가의 브륵샤아사나(나무자세)는 한 발로 중심을 잡고 한 발은 허벅지 안쪽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두 손을 하늘로 뻗어 합장을 하는 자세이다.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꽤 쉽지가 않다. 멀리 한 지점을 응시하면서 집중하면 균형을 잡기가 한결 수월해지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며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그러나 중심을 지키며 유연하게 흔들리면서 계속해서 균형을 잡아간다.
바람에 춤을 추며 흔들리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왜 나무자세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나무처럼 깊고 단단히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면, 우리는 더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다. 그렇게 유연하게 흔들리며 변화하는 계절을 맞이하고 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I am rooted but I flow”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또 우리 집 감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유연하게 흔들리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어떤 계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