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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Aug 27. 2024

엄마의 야생화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드디어 해가 떴다. 얼마 만에 보는 반짝이는 파란 하늘과 햇빛인지. 장마기간 동안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정원에 나가 보았더니 비바람에 꽃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씨앗부터 발아시켜 애지중지 꽃을 피우고 한 아이들이었는데 너무 얕게 심었던 게 문제일까? 섬에 부는 바람이 너무 세서였을까? 봄 동안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웠던 아름다운 정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정원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다. 초보 정원사의 첫 장마 신고식은 혹독했다.


태풍에 쓰러진 논밭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르고 망연자실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초토화된 정원에서 엄마가 심어놓은 야생화들만 건강히 햇빛을 향해 고개를 세우고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여행을 하고, 또 연고도 없는 부산의 섬마을에 자리를 잡게 되는 여정에 가장 큰 응원을 보낸 사람은 늘 엄마였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최적으로 선택지를 찾아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끔 해주었고 그 선택들에 누구보다 내 편이 되어 늘 응원해 주고 서포트를 해주셨다.


이사를 하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며 나보다 더 신이 나 정원 가꾸기를 도와주셨다. 정원이 생기면 가장 심고 싶었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능소화 묘목도 선물로 주서서 함께 심기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창고옆 장미 덤불을 일으켜 벽을 타고 자랄 수 있게끔 기둥을 만들어 준 것도 엄마였다.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엄마는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그야말로 Green Thumb(녹색손, 화초를 잘 기르는 손을 가리키는 영어표현)을 가지고 계셔서, 식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거나 하면 늘 엄마한테 도움을 청하곤 한다.


엄마랑 함께 정원을 가꾸며 상대적으로 햇빛이 잘 들어오고 1층 거실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정원의 좌측 편은 나의 무대였다. 정원 관련 책이나 영상 등에서 접한 유럽이나 영국식 가든에 많이 식재하는 달리아, 델피늄, 버베나, 헬레니움, 에린지움 등 이름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 꽃들을 심었다.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적은 정원 우측 편과 창고옆은 엄마의 무대였는데, 엄마는 평소에도 아끼고 좋아하는 야생화들을 부지런히 심었다. 비비추, 말발도리, 매발톱, 오이풀, 금낭화처럼 이름도 구수하고 왠지 촌스러운 것 같은 야생화들이었다.


긴 장마가 지나간 정원에는 억척스러운 엄마를 닮은 야생화들은 그늘진 곳에서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끄덕 없이 생명력이 넘치는 반면, 발레리나처럼 하늘하늘 가녀리고 긴 나의 꽃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져 있었다.


엄마의 야생화는 단단했다. 내가 산 시간의 갑절을 사는 동안 갖은 희로애락과 내가 감히 상상도 못 하는 삶의 크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며 억척스럽고 단단해진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그다음 봄엔 엄마의 야생화들은 더 단단히 자리를 잡고 만발했다. 특히 나란히 자리를 잡은 금낭화와 매발톱은 사이좋게 오랫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우리 집 정원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정원으로 나가 엄마를 닮은 야생화를 한참 들여다본다.


엄마가 살아간 시간을 따라가며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더 많은 경험을 하며 굳은살이 박히고 더 단단해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태어날 나의 딸에게 우리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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