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길 위에서

미국 서부 로드트립 1 - 샌프란시스코

비트닉과 마피아의 숨결이 아직까지 살아 숨 쉬는 곳

by Sentimental Vagabond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동부로 가기 위해 레이오버로만 오던 곳이었는데.


공항에 내려 수속을 마치고 우버를 불러 도심으로 향했다. 빨간 도요타차를 모는 라티노 계열의 아주머니 차였다. 파랗고 쨍한 하늘에 빨간 차의 창문을 활짝 내리고 바깥공기를 맡아보았다. 아, 미국이구나. 그것도 캘리포니아.



이번 여행의 일정은 총 15일인데, 가장 첫 번째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총 3박 4일을 머물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일정 동안 머 무기로 한 노브 힐 (Nob Hill)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철도 재벌 "놉스(Nobs)"의 이름을 딴 놉 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많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 중 하나라고한다. 베버리 힐스가 떠올랐다. 부자들은 언덕위에 많이 사는 것 같다.


1620년 영국에서 최초의 청교도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실어 나른 메이플라워호, 우리의 서부 로드트립은 1929년에 오픈하여 백 년이 다되어가는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시작하게 됐다.



호텔에 짐을 풀어두고 호텔 주인아저씨에게 추천받은 근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2월이지만 한국의 늦가을처럼 선선하고 기분 좋은 날씨였다.




서부 로드트립의 첫 끼로 몽골리안 비프와 시추안 치킨을 먹었다. 미국에 올 때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꼭 가게 되는데, 한국과 다른 좀 더 그리시한 미국식 중국음식만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오면 받는 포춘쿠키를 너무 좋아한다.


짝꿍과 제일 처음 미국에 함께 왔을 때(당시에는 남자 친구였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받은 포춘쿠키에는 “Be prepared to receive something special”라고 적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여행이 끝나고 1년 안에 짝꿍 결혼을 하고 스티키리키를 열고 나는 이직을 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나서 포춘쿠키를 받았다. 두근 대는 마음으로 열어 본 포춘쿠키 안에는 “It is good to let it a little sunshine out as well as in”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햇살이 넘치는 캘리포니아 로드트립에 딱 맞는 문구였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밤 산책을 나섰다. 이번 로드트립의 메인 테마는 비트닉이었기에 여행 첫날밤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노스 비치로 향했다.

노스 비치는 1950년대 잭 케루악, 알렌 긴즈버그 등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피난처이자 아지트였다. 그리고 그 가장 중심에는 시티라이트 서점과 베수비오가있다.



여행 전 짝꿍과 나는 잭 케루악을 함께 읽었었다. 나는 <길 위에서>를, 짝꿍은 <Big Sur>를. 그리고 여행 첫날밤 시티라이트 서점에 와서 각자 읽고 싶었던 책을 한 권씩 샀다. 서점을 한참 둘러보고는 서점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비트닉의 아지트인 베수비오에서 맥주 한잔씩을 마셨다.



1948년에 오픈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베수비오는 2020년까지도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과거에만 존재하는 역사가 아닌 아직까지 살아 숨 쉬는 역사인 듯 느껴졌다. 맥주를 마시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놉힐 이라는 지명 그대로 언덕 위에 위치해 언덕 아래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이렇게 첫째 날 밤이 저물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파란 하늘이 너무 반가웠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딤섬집인 항아에서 아점을 먹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미국 내에서 제일 큰 차이나타운이다.


1848년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서부에 대량 금광이 발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서부로 몰려가는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이와 맞물려 대륙횡단철도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약 1만 4천여 명의 중국인들이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이 됐고 1870년 대륙횡단철도 공사가 끝나고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거대한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고 한다.


America's First DIM SUM HOUSE라는 사인을 따라 항아에 들어가 딤섬을 시켰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너무 기대를 했었던 걸까? 맛은 사실 그냥 그랬다.



딤섬을 먹고 샌프란시스코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노스 비치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한참 바라보았다.



둘째 날은 샌프란시스코는 어떤 도시인지 좀 더 get to know 하기 위해 이곳저곳 발길 닫는 대로 걸어 보기로 했다. 파란 물감을 풀어 논 듯한 하늘에 쉴 새 없이 햇빛이 쏟아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은 햇살 때문일까? 아니면 여행자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느긋해서였을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둘째 날 저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친구 부부에게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냈다. 짝꿍과 나는 어느 곳에 여행을 가면, 우리가 이곳에서 산다면 어떨까?라는 상상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한다. 아무래도 짝꿍이 한국 사람이 아니다 보니, 어떤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것이 없고 늘 오픈된 상태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home이란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함께 있는 곳이 home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로컬 친구들에게 샌프란시스코의 삶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미션 지구 쪽과 돌로레스 파크를 가보고 아이스크림 투어를 하기로 한 날이다. 미션지구는 아티스트들과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과 홍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미션지구 곳곳에는 야외 벽화와 개성 있는 샵들 식당들이 많이 있다. 한국에서 유명한 타르틴의 1호 점도 미션지구에 위치해있다.


돌로레스 파크 위에 올라서니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로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공원 여기저기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돌로레스 파크에서 한참을 쉬다 내려와 본격적인 아이스크림 투어를 시작했다. 오늘 미션지구에서 돌아볼 아이스크림 가게는 총 세 군데로 Bi-rite > Mitchell’s > Humphry Slocombe 순서대로 돌아보았다. 세 군데 모두 맛있었지만 그중에서도 1953년에 처음 문을 연 이래 아직까지도 가족이 함께 운영을 하고 있는 미첼스 아이스크림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스티키리키를 남편과 함께 운영을 하고 있다 보니, 가족이 함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운영하고 있는 곳에 가장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우리도 오래오래 스티키리를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말이다.



아이스크림 리서치 이외에 여행을 가면 꼭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레코드 디깅이다. 레코드로 음악 듣는 걸 좋아하다 보니 여행을 가면 슈트케이스 가득 레코드를 사서 오는데, 그렇게 모은 것이 벌써 400장 가까이가 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샌프란과 LA 등 에서 가고 싶은 레코드샵을 미리 리스트업 해두었다. 여행 중 레코드를 구매하면 여행에 돌아와서 함께 들으며 그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짝꿍과 나만의 어떤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무언가를 함께 계속해서 나눌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아이스크림 투어와 레코드 디깅을 끝내고 성소수자 동네로 유명한 카스트로(Castro) 쪽 까지 걸어왔다. 샌프란시스코 도시 자체가 성소주자의 수도로 불리는데, 그중에서도 카스트로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동네답게 동네 여기저기 레인보우 깃발이 걸려있다. 카스트로의 랜드마크인 100년 된 카스트로 극장 앞에서는 어떤 성소수자 분의 퍼포먼스가 한창이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유독 ‘퀴어 프렌들리’ 한 것은 하비 밀크라는 정치인의 영향이다. 하비 밀크는 미국 최초의 성 소수자 공직자였으며 카스트로 스트리트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그는 11개월 동안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동성애자 권리 조례를 제정했고 성 소수자가 사회에 나올 것을 강조했다. 성 소수자의 상징물인 무지개 깃발을 만드는 것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홍석천씨가 정계에 진출을 하게 된다면 하비 밀크 같은 분이 되지않을까 싶다.


공기 속에서도 자유가 느껴지는 카스트로 길을 걷다 보면 구글, 애플, 트위터, 테슬라 등 혁신으로 상징되는 실리콘 벨리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성을 존중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랍지가 않았다. 혁신은 다양성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다운타운 쪽으로 이동 해 운동화와 몇몇 가지 쇼핑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어둑해져 저녁 시간이 가까워졌다. 영화 대부(God Father)나 굿 펠라처럼 이탈리아 이민자 마피아 영화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저녁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동네인 노스비치에서 클래식한 이탈리안 디너를 먹고 싶었다.


노스비치 지역은 작은 이탈리아(Little Italy)라고 불릴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이 만든 동네로, 아직까지도 동네 곳곳에는 이태리 식료품 상점이나 레스토랑들이 많이 있다. 레스토랑 여기저기를 보다가 아주 오래되고 소박해 보이는 식당 한 군데에 들어갔다. 깔라마리와 미트볼 라구 스파게티에 레드 와인을 시켰다. 마피아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올 것 같은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은 샌프란시스코 여행 마지막 날 저녁으로 완벽했다.



원주민이 살던 미대륙에 1600년쯤 영국인들이 처음 땅을 밟은 이래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시작했다. 1800년대에는 독일, 북서부 유럽인들이 이민을 해왔고, 영국인과 독일인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미국에 이탈리아 인들은 세계전쟁이 끝난 이후 상대적으로 늦게 이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인해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고, 그렇게 아일랜드를 탈출하여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당시 이태리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은 먼저 건너와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고 빈민가를 이루며 살며 충돌이 잦았다. 이탈리아 거주지엔 마피아가 아일랜드 거주지에도 아일랜드계 조직이 보호라는 명목 하에 지배를 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마피아 영화들은 이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19년 미국 내에 금주법 선포와 함께 이태리 마피아와 아일랜드 조직은 불법 술 사업에 손을 대며 그 세 력을 더 크게 확장하게 된다.


마피아 영화들과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며 짝꿍과 한참 얘기를 하며 저녁을 먹고 나서 근처 바로 자리를 옮겼다. 낮에 노스비치 쪽을 걸을 때 눈여겨봐 둔 바가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 중 하나로 금주법 선포 10년 전인 1907년에 오픈한 콤스톡 살룬이다. 계속해서 마피아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기 딱인 곳이었다.



콤스톡 살룬 2층에서는 라이브 재즈 밴드 연주가 한창이었다. 첫째 날 밤에 갔었던 베수비오는 비트닉의 아지트이자 비트닉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면, 마지막 날 밤은 콤스톡 살룬은 마피아 영화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본격적인 로드트립을 시작하는 날, 호텔 근처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고 우리와 함께 서부 퍼시픽 하이웨이를 달려 LA까지 함께 갈 차를 빌려 골드 너겟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첫 번째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필요한 식료품들과 요깃거리 장을 보고, 골드 너겟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채비를 갖췄다.



샌프란시스코 다음 우리의 목적지인 Big Sur를 향해, 우리의 긴 로드트립은 이제 시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