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길 위에서

미국 서부 로드트립 2 - Big Sur

1번 Pacific 하이웨이를 따라

by Sentimental Vagabond

골드 너겟이라고 이름 붙인 황금색 포드를 타고 우리의 로드트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ighway)는 캘리포니아주도 제1호선으로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부터 샌디에이고까지 총 656마일(1,056km)이 이어진 도로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여행에 오기 전 짝과 함께 나눠 읽었던 잭 케루악의 'On the road'와 'Big Sur'의 배경도 바로 이 곳,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다. 몇 년 전부터 꿈꿔온 로드트립이었는데 마침내 그 길 위에 서 출발을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의 로드트립은 샌프란시스코를 시작해 L.A 그리고 샌디에이고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쉼 없이 달린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7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Big Sur근처에서 이틀을 머무르며 근처 구경을 하고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충분히 즐기기로 했다.


여행 전 vrbo라는 곳을 통해 카멜 벨리 근처에 있는 캐빈을 이틀 밤 예약해두었다. 오후 3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캐빈을 목적지로 달려갔다. 캐빈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경치를 구경하고 휴식하다가 보니 산타크루즈 근처쯤에서 퇴근시간 러시아워로 꽤 시간이 걸렸고, 캐빈 근처에 왔을 때는 어느새 어둑한 밤이 되었다.


구글 내비게이션을 따라 칠흑 같은 밤 산속 깊이 있는 캐빈을 찾아가는 길, 과연 이런 곳에 집이 있을까 싶은 산길을 한참을 들어갔다. 비포장도로 산길을 한 15분 정도 달렸을 때쯤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다. 아무것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산속에 우리의 캐빈이 보였다.


캐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짐을 풀고 캐빈 안팎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갔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사 온 와인을 함께 마시며 우리의 로드트립을 자축하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을 때 창밖의 풍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창문으로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풍경과 파란 하늘이 보였다. 창밖으로 펼쳐진 믿기지 않는 풍경을 배경 삼아 샌프란시스코 타르틴에서 사 온 빵에 커피를 내려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살면서 맞이했던 혹은 맞이할 몇 안 되는 완벽한 아침이었다.



둘째 날은 좀 더 본격적으로 빅 서 근처 아름다운 풍경들을 돌아보고 즐기기로 했다. 먼저 몬터레이 쪽 17마일 로드를 향했다. 이곳에 위치한 페블비치 골프장은 세계 3대 골프장으로 이름나 있는데 마침 LPGA 경기가 진행 중이라 도로 자체가 봉쇄되어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빅스비 크릭 브리지 쪽을 향해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가장 꿈꿔왔던 빅스비 크릭 브릿지에 가까워오자 숨이 멎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빅스비 크릭 브릿지 (Bixby Creek Arch Bridge)


1932년 10월에 완공된 이 다리는 캘리포니아 태평양 해안의 상징물로 여러 영화나 자동차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 중 하나이다.


다리가 시작하기 전 지점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리 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 높이와 무게감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살아오면서 어떤 자연에 이렇게 압도되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샌프란시스코부터 LA까지 이어지는 이길, 뜨거운 태양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태평양이 펼쳐지는 1번 하이웨이는 마치 거대한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아름답기보다 광활하고 장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 길 위에 몇 번이나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모른다.


우리의 로드트립 주제가인 “When the morning comes”를 들으며 빅스비 크릭 브릿지를 건너면서 찍은 영상


여행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나 계절에 따라 짝꿍이 믹스 앨범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시즌 때마다 우리만의 주제가가 생기는데, 그 음악을 들으면 우리의 추억들과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기억이 나곤 한다.


역시 이번 여행을 위해서도 “American Wild West Roadtrip”라는 앨범을 만들어주었다. 이 앨범을 들으며 퍼시픽 코스트 로드트립을 했는데, 마침 빅스비 크릭 브릿지를 건널 때 흘러나오던 음악은 홀 앤 오츠의 “When the morning comes”였다.


여행에 돌아와 출근을 할 때, 주말 아침 커피를 마시며 들어도 들을 때마다 뭉클해지고, 오늘 하루 사랑하며 잘 살고 싶어 지게 만드는 이 노래는 우리의 인생 곡이 되었다. 여행 때 들었을 때부터 이 노래는 웨딩파티를 하면 메인 테마곡으로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우리 부부는 혼인신고만 하고 아직 웨딩파티를 하지않았다), 짝꿍도 똑같이 생각했었다고.


빅스비 크릭 브릿지에서 십여분을 더 달려 작은 레스토랑에서 루벤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짝꿍이 좋아하는 작가인 헨리 밀러 메모리얼 도서관(Henry Miller Memorial Library)에 갔다. 도서관을 돌아보고 짝꿍이 사고 싶었던 Air-Conditioned Nightmare 책 한 권을 샀다.





캐빈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해안도로가 아닌 숲길을 탐방해 보기로 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아주 깊은 숲 길안에 귀여운 집들이 있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렇게 고립된 깊은 자연 안에서 산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여행을 하면 그곳에서의 삶을 그려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곳저곳 탐험을 하다 보니 어느새 카멜 밸리에 해가지고 큰 보름달이 뜨고 있었다. 캐빈으로 돌아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사 온 칠리와 치즈 초리조로 카우보이 스타일 칠리를 만들어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캐빈에서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다음 날 아침, 캐빈을 정리하고 정든 캐빈 앞에서 사진을 찍고 또 다른 우리 로드트립의 여정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기 전에 캐빈 근처에 있는 와일드 웨스트 카우보이 스타일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된 미국식 아침식사를 했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레스토랑은 꽉 차 있었다. 식사를 하고 유쾌한 주인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L.A까지 가는 긴 로드트립을 나섰다.



L.A 숙소는 내일 체크인이고, 오늘은 길 위를 자유롭게 천천히 달리다 원하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L.A까지 달리는 길에 어제 돌아보지 못했던 파이퍼 비치와 맥 웨이 폭포와 바다사자 서식지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파이퍼 비치 (Pfeiffer Beach)


L.A로 가는 길은 거대한 자연 국립공원과 같다. 곳곳에 멋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첫 번째로 들린 파이퍼 비치는 보라색 모래, 거대한 암석 지형,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평화로운 해변이다. 해변에는 간단히 피크닉을 나온 연인과 가족들이 있었다. 한참을 해변에 앉아 멍하니 파도 가치는 것을 바라보다 파이퍼 비치 근처 맥 웨이 폭포(McWay Falls)로 향했다.


맥웨이 폭포(McWay Falls)


높은 절벽 위에 깎아진 해안도로를 계속해서 달리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면, 그 바다가 너무나도 커서 지구가 둥글다는 게 몸소 느껴질 정도였다.



수많은 바다사자들이 한가로이 잠자고 있는 바다사자 해변에 들러 바다사자들을 한참 또 바라보다가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서쪽 바다로 해가 점점 저물어가고 있었다.



구글맵을 보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모로 베이(Moro Bay)라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L.A로 거쳐가는 관문이라 그런지 숙소들이 꽤 많아 보여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지만 오늘 밤은 이 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작은 바닷가 마을인 모로베이는 마치 성산일출봉 같은 큰 암석 산이 있어 뭔가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보이는 한 숙소에 방이 있냐 물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일하시는 분이 한국에서 2년간 일을 했었다며 아주 반갑게 맞이 해 주었다. 처음 들어본 지명의 마을에 랜덤 하게 들어온 숙소에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분을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도 신기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두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저녁을 먹었다. 좋은 인연을 만나서인지 이름도 몰랐던 '모로 베이'라는 이 곳에 왠지 모르게 더 정이갔다.



다음 날 아침, 어제저녁 문이 닫아서 못 갔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작은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을 시켜먹고 L.A를 향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L.A까지 가는 길도 우리는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닿는 대로 천천히 즐기며 가기로 했다. 로드트립은 목적지보다는 그 여정 자체가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가는 길에 '산타바바라'라는 작은 도시에 들리기로 했다. 오래전에 배우 윤진서와 이상윤이 출연한 영화 때문에 꼭 한번 와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산타바바라는 18세기 말경 스페인계 이주자들에 의해 개척된 곳이라 그런지 스페인풍 양식의 건축물들이 눈에 띄었다. 다운타운을 한 바퀴 구경하고 맥코넬 아이스크림에서 아이스크림 한스쿱을 먹었다. 2월인데도 쨍하게 파란 하늘에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마치 여름 같았다.



창문을 내리고 따뜻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계속해서 길을 달렸다. 말리부, 산타모니카처럼 수도 없이 어딘가에서 들어왔던 지명들을 지나 드디어 L.A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3일간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드디어 L.A에 도착했다. 2주간의 로드트립 여정의 딱 절반을 달려왔다. 앞으로 남은 여정 동안 길 위에서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될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