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은 타인을 구원할 수 없어
나는 나만 구원할 수 있어
각자는 각자의 삶만 구원하는 거야
스스로 구원할 수 있게 동아줄을 던져줄 수는 있어도 그 동아줄을 타고 올라오는 힘든 노력을 하느냐는 본인에게만 달려있다.
동아줄을 던져주었다는 이유로 언제 올라올 거냐며 닦달해봤자 서로에게 지옥이 될 뿐이다.
X는 공포회피형(회피형+불안형)이었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고치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몇 번이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불편이 익숙한데, 이 불편은 내가 평생 가지고 살아온 불편이라 그냥저냥 살아가면 되는데,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가 떨어지면?
동아줄을 내려준 네가 동아줄을 놔버리면?
올라가다가도 기어 내려오고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도 감이 잡히질 않아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끝내 동아줄을 타고 올라오지 못했고,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20대 초반 연애 때 회피형에 가까웠다.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잘못하면 시간을 갖자 했다.
상대가 시간을 갖자는 내 말에도 참지 못하고 연락이 오면 받아주었으니 그리 심한 회피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그랬다.
'나는 당장 그와 헤어질 생각밖에 안 드는데, 그건 충동적인 감정이니 감정을 식히고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
얼핏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연애 상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생각이었다.
상대가 잘못했는데 내가 왜 거기까지 배려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표현을 썼냐 하면 그 관계를 장기적으로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내가 그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와 미래를 그리고 결혼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며, 언젠가 나는 그와 헤어질 운명이었다.
그러니 그와 장기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가 잘못했으니 내가 배려할 이유가 없으며, 그는 내가 생각 정리할 시간을 응당 제공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안다.
고작 그 정도의 마음이라면 연애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해 본다. X는 나와 미래를 그리지 않았기에 나를 배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내가 아프든가 말든가 회피해 버린 걸까.
나는 20대 초반 그 연애를 마지막으로 5년간 연애하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자아성찰을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주 사랑하는 공포회피형 남자를 만났다.
그가 나를 회피했던 시간들은 지옥 같았다.
20대 초반, 내가 회피했을 땐 나는 그냥 그 사람이 꼴도 보기 싫었고, 명백히 그의 잘못이라 대화할 거리도 없었으며 내 울렁이는 감정이 가라앉고 나서 용서가 되냐 안되냐의 문제에 있었다. 그가 불안하든 말든 관심 없었다.
반대로 공포회피형인 X를 만나고 나서 안정형에 가까워져 있던 나는 불안형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생각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고, 주인 기다리는 개 마냥 기다려야 했던 나는 그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왜 그가 잘못해 놓고 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늘 도망갔고, 나는 그를 너무 사랑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재밌게도 X는 생각 정리라는 핑계로 시간을 벌었지만 그 시간 동안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조건적인 회피를 했고, 시간이 지나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면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회피형이었던 과거의 나는 정말 생각 정리를 했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별 생각 안 했다는 그의 대답을 들을 때면 그가 마치 나를 농락하는 것만 같았다.
사랑은 잔인하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늘 약자가 된다.
그는 나를 단 한 번을 책임지는 법을 몰랐고, 늘 뱉은 말을 지키지 못했으며, 자아성찰을 하지 않기에 그의 잘못에서 반성하고 성장할 줄 몰랐다. 그는 그의 잘못마저 회피했다.
마치 그 잘못을 인정하면 완전무결해야 하는 자신이 형편없이 망가져버린다는 듯이.
공포회피형은 자존감이 매우 낮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이 더 형편없는 사람같이 느껴지기에 잘못을 회피한다.
나는 그를 2년을 믿고 만났다.
사랑은 대단한 감정이라 아무리 상처받고 버려져도 좌절할 줄을 몰랐다.
BTS의 Love maze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니가 밀면 넘어질게, 날 일으켜줘'
나는 그가 아무리 나를 밀어도, 그가 대충 일으켜주는 시늉만 해도 훌훌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사랑의 힘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이어서 Love maz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손을 놓지마. 미로 속에서 절대 날 놓치면 안돼.'
우리는 2년간 5번을 헤어지고 만났다.
그는 내 손을 너무 자주 놓쳤다.
4번째 재회를 할 때 나는 소용없을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면 넌 앞으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면 안돼. 약속해. 너가 약속하지 않으면 난 너와 재회하지 않을 거야."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5개월 뒤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를 즈려밟고 갔다.
그가 이별을 고하던 당시 나는 직장을 퇴사한 채 수술날짜를 받아놓고 기다리던 환자였다. 그는 전화조차 용기가 안난다며 카톡으로 이별을 고했다.
우리의 두 번째 이별이 떠올랐다.
그의 실수로 아프게 된 나를 두고, 그는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우기다가 우리는 이별을 맞게 됐었다.
그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아득바득 애쓰던 나를 비웃듯 그는 2년간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이별이 덤덤하게 받아들여졌다.
괜찮다. 그의 탓이 아니다.
그를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한 나의 오만이 문제였다.
사실 괜찮지 않다.
그와의 행복한 미래를 그렸고 결혼까지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아야만 한다.
이미 곁에 그는 없고,
이제는 그가 절대로 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며,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동아줄을 내려주고 타인의 문제는 타인에게 맡긴 채 내 문제에 집중하는 일뿐이다.
타인을 구원하겠다고 내린 동아줄에 온 힘을 쏟아붓다간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동아줄에 목이 감겨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
혹자가 저에게 왜 그런 똥차를 2년이나 만났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저 그를 아주 많이 사랑했습니다.
Q.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뭔가요?
A. 상대방에게 끌리는 마음에 이유가 있다면 좋아하는 것이고 이유가 없으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아주 많이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