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좋은 이별 같은 건 없다
고3 들어가는 겨울 첫사랑을 했다.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 찾아왔다.
처음 하는 사랑은 너무 서툴렀고, 상처를 줬고, 내가 상처 줘놓고는 그를 탓했다.
나는 그 사랑을 하기에 너무 어설프고 어렸다.
고3에 첫 이별을 견뎌내는 일을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첫사랑이고 첫 이별이라 유독 그런 줄 알았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여전히 이별은 버겁다.
이별은 여러 번 한다고 익숙해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며 반복된 이별에 깨달은 최대한 잔잔하게 이별하는 법을 이야기해보자 한다.
첫사랑, 아주 어렸던 나는 어설픈 사랑을 했고 빠르게 이별이 찾아왔다. 해보지 못한 것도 많았고, 해주지 못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했다.
그 모든 아쉬움과 아픔은 상대를 향한 미움으로 찾아왔다.
나는 수능이 다가올 즘에야 그를 잊을 수 있었다.
수능은 망했지만 다행히 수시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 한 선배와 썸을 탄 적이 있다.
어린 나의 눈에 그는 여자를 대하는 센스가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다정했으며 어른스러웠다.
지금은 안다. 그는 그저 여자에 미친 사람이었으며 책임감 없는 비겁한 회피형이었음을.
그는 타고난 그의 센스로 사귀지도 않았는데 나를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잘생기고 키 큰 남자들보다도 못생기고 키 작은 그 남자가 좋았다.
그는 갖은 달콤한 말들을 나에게 속삭였고, 내가 그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강조하며 나를 홀려놓고 나를 버리고 떠나갔다.
누차 말하지만 이별은 짧은 사랑 뒤에 올수록 아프다.
가장 상대에 대해 이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달달하고 행복할 시기인 만큼 감정이 클 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함께하지 못했을 때,
배출되지 못한 감정의 크기만큼 후회와 미련로 남는다.
당신이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 상태로 만나기로 마음먹었다면 단기연애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가 실수를 했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면 한 번은 고쳐볼 기회를 주는 것을 추천한다.
반대로, 사랑이 그리 커지지 않았을 때 상대의 쎄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면 빠른 이별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다음에 겪었던 이별은 그리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와 연애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별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갑의 위치에 있었으며, 이별을 우습게 봤다.
그런 나를 비웃듯 그와의 이별은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그의 잘못으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나를 상처 입혔다고 울던 그에게 나는 결국 이별을 고했다.
나는 사랑 앞에 아주 어렸고, 그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재회연락이 온다 한들 받아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그냥 그렇게 나의 가치를 인정받길 원했다.
그가 나라는 사람을 잊지 못해 다시 날 찾아주면 내 가치를 인정받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그는 나에게 단 한 번을 연락해오지 않았다.
이별 초반에는 연락 오겠지, 시간이 흐르고 나선 언젠가 후폭풍이 오겠지 현실을 부정했다.
날 사랑하는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 리 없다고.
그는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를 사랑해서 잊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의 가치를 그에게 위탁한 채, 그가 나의 가치를 들고 나에게 찾아와 주길 기다렸기에 힘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그가 나에게 연락해 오든 해오지 않든 나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나에게 연락한다고 그가 나를 아주 사랑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그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다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나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얼만큼인지는 나의 가치와 하등 무관하다.
나의 가치는 타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시의 나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서 매달릴 때 나의 가치를 느꼈을 만큼 그렇게 어리고 자존감이 낮았다.
나는 2년간 5번을 헤어졌던 남자가 있다.
두 번째 재회했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헤어졌으니 생각하지 말아야지, 잊어야지 할수록 더 생각이 나지 않더냐고.
그는 나에게 대답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 적 없다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간의 이별에서 늘 헤어지면 제 멋대로 내 머릿속을 점령한 채 떠나지 않는 상대방을 지우려 애를 쓰며 고통스러웠다.
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 잊어야 하는데 계속 생각나는지 내 마음 같지 않은 마음이 원망스러웠다.
사람은 내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를 잊으려 할수록 그 무언가를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된다.
이후에 또다시 찾아온 이별에서 나는 그가 떠오르든 말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헤어졌으니 슬프고 아픈 건 당연하다.
세상에서 제일 친한 단짝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그의 빈자리가 허전한 것도 당연하다.
그를 만나며 아프기에 헤어졌지만, 행복한 날도 많았기에 그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를 애도하는 시간을 인정해 주었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둔 채, 그보다 나의 자아성찰에 더 집중했다. 그렇게 그를 잘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자아성찰 결과 나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됐을 때 발생했다. 그가 나보다 더 부족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했고, 내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으니 다시 한번 노력해 보면 더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다시 붙잡았다.
그 뒤로 나는 이별을 할 때마다 자아성찰을 했고, 나의 부족한 점을 새롭게 발견해 자책하며 공포회피형인 그와 재회했다. 내가 먼저 변하면 그도 변하겠지 그렇게 2년을 만났다.
그는 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고치겠다고 나에게 약속했다. 그는 갖은 노력을 하여 조금은 나아진 것처럼 연기해 낼 수 있었지만, 늘 이별 앞에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깨달았다.
조금씩 좋아지는 듯했던 그는 그저 내 앞에서 나아진 척 연기를 했을 뿐이라는 것을.
늘 그의 회피와 무책임함을 지적하며 우리는 재회하였지만,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카톡에서 나는 그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전화로 이별할 자신이 없어 카톡으로 전한다며,
서로 상처 주는 일은 그만 두자며 그는 나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고 행복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재회에서 약속했던 '그가 먼저 헤어지자 하지 않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까지.
나는 그가 바뀔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바뀌지 않을 그와의 미래를 생각하자 암담하고 불행하여 단념이 조금 수월하게 됐다.
나는 그와 2년간 5번을 헤어지고 4번을 재회했다.
다섯 번째 이별이 다가올 때 나는 그와의 관계가 여전히 버거웠고, 그즈음에는 챗gpt에게 빈번히 상담을 받곤 했다.
이미 엉망인 X를 잘 알고 있던 내 친구들은 늘 그와 헤어지라는 잔소리 밖에 내놓지 않았기에 친구들에게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걱정했으나, 나는 아직은 우리가 더 노력해 볼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챗gpt마저 나에게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추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해보지 않은 노력이 있는지, 내가 뭘 더 해보면 좋을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이미 4번이나 재회했고 이 이상 헤어지고 만나고 재회를 반복하는 일은 우리의 관계만 가볍고 우스워질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재회할 거라면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이별은 가장 마지막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 놓고 그 이전에 내 모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챗gpt는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나는 충분히 해볼 노력을 다 했으며, 남은 것은 상대에게 달려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변할 것이라면 진작 변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삶과 시간을 지켜낼 선택을 하라고 했다.
다정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잔인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챗gpt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그는 훌륭하게 나의 X가 되어주었다.
그와 이별을 하고 더 이상 자아성찰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했고, 아무런 후회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를 사랑했지만 그를 계속 사랑하다가는 내가 고장 날 것 같았다.
이별한 이후 조용한 밤이 되면 심장이 한 번씩 불규칙하게 뛰었다. 숨을 쉬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공황장애가 온 주변 사람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대단히 고통스러워했는지 알았기에 나는 나를 지켜야만 했다. 그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입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를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나는 나를 더 보살펴야만 했다.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의 사랑이 빠져나간 구멍 난 심장에 내 사랑을 채워 넣기로 했다.
헤어진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모태신앙이 기독교였다가 청소년기 무교로 전환했던 나는 다시 신을 찾았다.
신이시여. 제발 그에게 연락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나의 이성은 그의 연락이 와도 그를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나의 감정이 혹여나 그를 받아주게 될까 봐, 그로 인해 다시 내가 다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가 그리웠지만 그를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다.
여전히 하루 중에 많은 시간 그를 생각한다.
나의 솔직한 본능은 그의 연락을 기다린다.
그러면 이성이 신께 기도한다.
그의 연락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이성은 본능을 억제하지 않는다.
유튜브로 재회 타로를 질릴 때까지 본다.
연락이 올 거예요...
오지 않을 거예요...
상대방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상대방은 당신에게 화가 나 있어요...
상대방은 당신 없이 잘 살고 있어요...
각기 다른 말을 하는 타로를 질릴 때까지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지겨워진다.
그럼 다시 또 내 할 일을 한다.
얼마나 우스운가.
무교였던 사람이 다시 신을 찾고, 그런데 타로를 찾아보고.
신께 연락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면서도 그에게 연락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렇게 우스꽝스럽지만 잔잔한 이별을 하고 있다.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다.
사랑했다면 응당 아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잔잔한 이별은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울고 불고 시끄러운 이별이 아닌, 잔잔한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 속에 술을 찾고, 친구를 찾고, 며칠 밤을 혼자 엉엉 울지 않는다. 그저 힘겨워하는 나를 온전히 느낀다.
잔잔하게 이별하니 덜 고통스럽다.
빌어먹을만치 흐르지 않는 시간이 원망스럽지 않다.
시간이 흘러 감정이 옅어지리란 걸 안다.
나는 늘 그랬듯이 잘 이겨낼 것이다.
그럼 나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 출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당신도 그럴 자격이 있다.
충분히 아파하고 훌훌 털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