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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18. 2020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

소공녀(2020) 2호

사실 내가 생각해도 첫 집은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의 취지에는 맞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녀는 최근까지 연락을 했던 친구여서 오래된 친구는 아니기 때문에. 나도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전빵을 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기로 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내 휴대전화에 '시니컬 **'라고 저장할 정도로 그녀는 살갑고 다정한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차갑고 냉정한 사람은 아니어서 굉장히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녀는 공부를 정말 잘했다. 반에서 항상 1등만 했고 나는 중간에서 중간 이상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서울대가 목표였던 친구와 인서울이 목표였던 나는 고등학교 때는 잘 지냈지만 아마도 대학에 가면 지금처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수능 망친 나와 달리 그녀는 서울교대에 합격했었기 때문에 수능을 망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스무 살에 최선을 다하고 두 번째 수능이 끝난 후 서울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둘 다 결과는 좋았다. 아니 그녀는 원래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나는 많은 노력을 해서 수능 100점을 올렸다. 현역 때보다 좋았던 수능 성적에 우리는 어느 학교를 지원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도 서울대 써 봐. 같이 다니자."

"나는 **과밖에 못 써. 그리고 난 내신이 안 좋잖아. 서울대는 쭉 잘하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것 같아."

"그런가? **과는 좀 그렇다."

"그래. 나중에 서울대 구경이나 시켜 줘. 너도 놀러 오고."


그렇게 나는 당연히 그녀가 서울대에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또 한 번 실패했다. 수능도 잘 봤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내 친구가 가지 못한 서울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사회에서 서울대생을 만나면 존경과 경외심까지 들기도 한다. 물론 우리 학교도 좋은 학교였지만 그녀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그녀의 엄청난 불운 탓에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4년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사실 대학 시절에 좋은 추억이 없다. 그 이유는 대학교 친구들 4명,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CC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노력해 봤겠지만 CC는 원래 비밀로 사귀다가 뒤늦게 밝혀지는 케이스가 다반사이다. 다들 할 말이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을 때 그 충격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미 끼리끼리 어울리는 무리가 생긴 이후여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학 친구들이 공개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이후 '2+1'이나 '불청객' 이 나를 칭하는 대명사가 되었고 그때부터 나의 '외롬병'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6개월 정도 원인 모를 스트레스로 온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나서 피부과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친구가 캠퍼스에 없었다면 내 외로움은 감당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같은 과 친구들보다 이 친구와 밥을 더 많이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등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끝나고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서로에게 가장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과장이 아니라 그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사진첩에는 그녀의 사진으로 가득 차서 나는 그 친구 이름으로 폴더를 하나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친구가 없어. 아니, 친구가 너밖에 없어", "외로워", "우울해"와 같은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슬픈 감정들도 서로에게 필터링 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일, 크리스마스, 연말과 같이 사람의 온정이 그리운 그런 특별한 날도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함께 보냈다.


대학교 2학년이 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법대인 그 친구는 당연히 사법고시를 보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너도 사시 봐."

"야, 내가 그걸 어떻게 봐. 난 법대도 아닌데."

"이중 전공하면 되잖아. 같이 공부하자."

"나는 너처럼 똑똑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진짜 노력해서 이 학교 들어온 거야. 난 취업해야지."

그때 단 한 번에 그녀의 말을 잘라냈는데 나는 가끔 그 시간이 떠오른다. 그때 나도 사시를 봤다면 어땠을까. 그녀와 같은 대학에 들어왔듯이 같은 일을 하게 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도 해 보지 않았음에 후회가 들 때가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이후로 전처럼 시간을 많이 보내기란 어려웠다. 가끔 시간을 내어 그녀를 만났고 당시 직장생활에 치여 힘들었던 나는 그녀의 SNS에서 내 사진을 발견하고 펑펑 운 기억이 있다. '외로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와 찍은 사진에 적어 놓은 한 문장. 아마 그 말은 '오늘 재미있었다'와 같은 상투적인 말을 쓰고 싶지 않아서 그냥 써 놓은 말일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가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 문장은 나를 가장 잘 알고 오래 지켜봐 왔으며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았기 때문에 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면전에 대고 낯 간지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최고의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첫 취업 이후로 계속 방황을 했고 그녀는 사시 패스한 이후로 승승장구였다. 그녀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고 너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 것은 나의 옹졸한 마음이었다. 그녀가 결혼 날짜를 잡고 청첩장을 주기로 해서 오랜만에 만난 날도 난 계약이 해지된 이후로 6개월 이상 놀고 있을 때였다. 난 그때 통장에 들어오는 돈 없이 나가고만 있었고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고 있지 않으니 결혼식에 입고 갈 옷조차 없었다. 이 친구가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초라한 내 자신이 밉고 슬펐다. 누구보다 예쁘게 하고 가서 축의금도 넉넉하게 내고 싶었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를 보며 그 친구와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혼자 판단했던 것 같다.


그녀는 결혼을 한 이후로 더 바빠졌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가끔 같이 밥을 먹고 신혼집 구경도 갔지만 먼저 연락하기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친한 친구가 아니라 친했던 친구라고 나름의 정리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추억도 많았기 때문에 문득 생각이 나면 슬프기도 했다. 3년 정도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 너무 바빠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어. 나 지금 휴직했어."

교직원이었을 때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어 강사가 된 이후로 그녀를 만났다. 나는 신상이 2번 바뀌었고 서울에서 일했던 그녀는 지금 지방에 있다고 했다. 서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나는 정말 아끼던 것을 잃어버렸다가 우연히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기분이 들었다. 끊어진 인연이 다시 이어진 것이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에.


물론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서 우리는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그녀가 언제든 시간이 되면 놀러 오라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바쁜 친구를 보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가 언제 또 생길지 모르니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기로 했다. 예전에 그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는 상황이어서 마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설렜다. 못 보는 동안 그녀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상태였지만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반가웠다. 주말에는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평일에 그녀를 만나러 갔기 때문에 하루 종일 놀 수는 없고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후에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녀와 점심을 먹고 큰 창이 있는 예쁜 카페에 가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저녁에는 식사를 한 후에 야경도 보고 집에 와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출근하기 전에 가고 싶은 곳 있어?"

"너 안 피곤해? 나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나도 누구 없으면 잘 안 돌아다녀서."

"너 이렇게 효도 관광 스타일인 줄 몰랐다. 결혼하기 전에 같이 여행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나도 같이 갈 사람 없어서 매번 엄마랑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기 때문에 생각도 못 하고."


그렇게 우리는 그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관광지에 가서 사진 100장을 찍었다. 평소 아침을 안 먹는다고 했지만 그녀는 맛집을 한 군데라도 더 데려가고 싶어 했고 배 터지게 아침을 먹고 헤어졌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내가 어디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가 보면 좋을 맛집이나 카페도 알려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사람을 부담스럽지 않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친구였고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그녀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언제 보더라도 반가울 것 같다. 그녀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 그리고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반가운 만남이 성사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하고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연락해 볼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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