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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Oct 25. 2019

#1 우리는 왜 뒤늦게야 달리는가

첫번째 고찰. 횡단보도를 건너다

직장동료 둘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약 20m 가량 떨어진 횡단보도가 30초 보행자 신호로 바뀐다.


강남대로는 8차선 이기에, 이번 신호를 놓치면 의미 없이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평소 마음이 급한 나는 동료 A와 B에게 묻는다.


페페: 뛰면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뛸까요?
직장인 A : 뛰어볼까요?
직장인 B : 그냥 다음 신호 건너죠 아직 시간도 많은데.


심플한 대화, 점심시간은 꽤 많이 남았기 때문에 직장인 B의 말과 같이 '굳이' 뛰어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짧은 대화를 하는 사이에 횡단보도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고, 보행자 신호는 10초 가량 남게 되었다.


횡단보도와 버스 정류장은 머피의 법칙이 항상 이루어지는 곳이 아닐까?


8차선 횡단보도, 남은시간 10초, 건널 수 없을 시간도 아니고 여유있게 건널 시간도 아닌 그 애매한 시간.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페페: 뛸까요?

직장인 A : 뛰죠.

직장인 B : 뛰죠.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통하고 손발을 맞춰온 10년지기 친구마냥 (사실 서로 알게된 지 반년조차 되지 않았지만) 셋이서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가장 마지막으로 달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으로 횡단보도 건너기 끝.

이 짧은 단거리 달리기 시간(?) 동안 참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의 인생은, 우리들 인간의 삶은 이 횡단보도 건너기와 같지 않은가!



이게 뭔 X소리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오늘과 같은 일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보행자 신호가 30초가 남았을때, 조금 빨리 걸었다면 더 여유롭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다음으로 기약, 그러나 결국은 한번 더 기다리지 못해 뒤늦게 달려왔던 그런 삶.


대학생 시절에는 1달 전부터 고지된 시험범위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미루다 3일 전에나 벼락치기 공부를 했었고, 기획자로 일하는 지금은 캘린더에 최후의 데드라인을 적어놓고 당일에 마무리를 짓는다.




참으로 우습게도 내 주변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런걸 유유상종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루고 미루던 일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때

나와 주변인들은 그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말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런 행동이 잘못되었고, 비 경제적이며, 비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횡단보도 건너기를 포기했던 그 날의 20초 동안 더 많은 대화를 더 여유롭게 나눴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던 20일 가량은 더 많이 친구들과 놀았을 것이며,

데드라인 당일이 아니었던 날은 다른 업무에 더 신경을 썼거나 더 빠른 퇴근을 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 단점이 있기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대로도 괜찮았다' 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지만..10초 달리고 숨이 차오르는 꽤나 나이가 든 내 모습을 보면서
 '미루지 않아야 할 일은 미루지 말자..' 라는 말도 이제는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다.





페페의 인간에 대한 고찰시리즈는

말도 안되지만, 이렇게 까지 비약을 해도 될 지 모르겠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작은 철학책을 지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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