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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Oct 25. 2019

#2 우린 모두 '조류'가 되고 싶을지도

두번째 고찰. 구이진 작가의 개인전을 보고

이 이야기는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이제 와서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복기하여 적어 보자니, 많이 오그라드는 건 사실.
사람의 생각이라는게 참 웃기면서 복잡 미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생각과 행동 조차 이제는 절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새삼 재밌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면, 2014년 구이진 작가의 개인전을 우연찮게 역삼의 갤러리에서 보게 되었다.

'사소한 신화' 라는 주제였던 이 그림전은, 의인화한 동물로 신화 속 이야기를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 창조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작품 '뼈나무'


작품 '뼈나무'.
잎이 없는 나뭇가지는 빨간색으로 표현이 되었고, 작품 제목처럼 말 그대로 '뼈로 이루어진 나무' 가 떠올랐다.


작품 '나르시스트'


새들의 화려한 깃털에 파묻힌 인간, 혹은 새를 표현한 작품 '나르시스트'

사람(혹은 새)의 이목을 끄는 명품 가방, 깃털과도 같은 옷, 아름다움을 넘어 화려하게 치장된 화장 혹은 무엇인가.

그림 속의 그녀(혹은 그, 혹은 새)는 지금 나르시즘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작품 '아주 오래된 수수께끼1'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아주 오래된 수수께끼1'


다시 돌아가 2014년, 이 당시에는 스키니진이 굉장히 유행했다.

하체는 스키니하게, 상체는 더욱 크게!

넓은 어깨에 대한 남자들의 갈망은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당시에는 그 풍토가 굉장히 심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등록한 헬스장에 들어가서 트레이너님에게 가장 먼저 요청했던 것이


하체 운동은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어깨가 넓어지는 운동으로 루틴을 짜주세요!


였으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도 지금은 모든 운동의 기본은 하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열심히 하는 중이다.)


어찌됬든, 그 당시에 이 그림을 보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모두 조류가 되고 싶은 것일까?


얇은 하체, 두껍고 큰 상체, 화려한 외관, 그리고..

훈남, 훈녀(?) 의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극명하게 눈에 띄는 소두!


그 날 나는 감히 비둘기를 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해 비둘기야


어쩌면 우리 인간의 종착점은 이런 비둘기같은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과 함께 피식 웃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가 '조류' 라는 말을 좋아하는가.

요즘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닭대가리' 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참 많이도 사용했었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닭.대.가.리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결국 외향적인 아름다움만을 쫓아가는 자는 만족할만 한 바디 쉐잎을 얻게 될 지 언정,

결국 '조류', 소위 '닭대가리' 가 될 것이라는 것 이었다.


엄청난 인사이트,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작가님에게 메일까지 보내는 추태(?)를 보이게 되었고,

정말 감사하게도 한 통의 답장을 받기도 했었다.


혹시나 하여 이메일을 찾아보니 2014년 당시의 메일이 아직 그대로 있다는게 참..

디지털이란 것이 대단하면서도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기갑 광고홍보 전공 대학생!


나는 학생때도, '다름이 아니오라' 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었으며,

참으로 패기가 있던 사람이었다.


학생의 상상력에 그 어떤 흠도 내지 않고, 정성스럽게 답변을 주신 작가님



조금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몽환적인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서 저런 생각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주변인들에게 '나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고 뽐냈던 것이 나의 과거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처럼 스키니한 하체, 볼륨있는 상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일까? 과거에 내가 했던 이 인간에 대한 고찰이, 솔직히 지금은 그때만큼은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생각도 변하는 것인가 보다.




작품 'Bird man' , 작가는 페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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