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벌꿀 May 19. 2020

시칠리아 디저트 이리스를 아시나요

영화로 읽는 이탈리아 이야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르투로가 잠자기 전에 아빠에게 물어보는 장면 중>


- Ma la mafia può uccidere anche noi? 

(그런데 마피아가 우리도 죽일 수 있어요?)

- Arturo, tranquillo, ora siamo d'inverno... la mafia uccide solo d'estate. 

(아르투로, 걱정마렴, 지금 우리는 겨울이잖니. 마피아는 여름에만 죽인단다)





<La mafia uccide solo d'estate 마피아는 여름에만 죽인다 2013 Pif>



마피아에 관련된 영화가 많지만 이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다큐멘터리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치 아름다운 한편의 동화를 보는 것처럼 70-90년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팔레르모를 배경으로 그려냈는데 Arturo 아르투로 라는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당시의 상황 속 얽혀있는 마피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이 영화를 만든 Pif (Pierfrancesco Diliberto) 감독은 이탈리아의 역사적 사회적 소재들에 대해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감독도 하고 티비와 라디오 프로그램 등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해내는 예술가다. 그가 만든 이 다음번 영화도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의 시작은 Salvatore Riina (Totò Riina 마피아 보스 중의 보스로 유명한)가 전체 팔레르모를 점령하기 위해 첫번째 전쟁의 살인을 시작한 날, 1969년 12월 10일에 아르투로는 태어난다. 알게모르게 간접적으로 마피아 문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아르투로는 성장해가며 마피아의 범죄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진다. 초등학생 소년이 된 아르투로는 같은 학급에 전학 온 Flora 플로라를 좋아며 저널리스트가 되는게 꿈이다. 사랑과 순수함 행복이 넘치는 팔레르모에서는 또한 도시 한복판에서 총성소리와 살인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영화의 대사들은 마피아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코믹하게 관객들에게 설명해준다. 말이 늦은 아르투로를 보고 신부는 그의 가족에게 'Cu parla poco campa chiù assai' 이탈리아어로는 'Chi parla poco, campa molto di più  적게 말하는 자, 더 오래산다' 고 말한다. 


이 대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Omertà 오메르타 를 말한다. 침묵의 규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마피아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가지고 있는 문화다. 어떤 상황을 보았을 때나 알고 있을 때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경찰이나 검사의 조사를 받아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증거나 증언이 이루어지기가 불가능하다. 이 침묵의 문화는 여전해 존재하며 마피아들을 제거하지 못하는 요인 중에 하나로 작용한다.  



영화 포스터에 그려진 아르투로가 흉내내고 있는 것은 Giulio Andreotti 정치인이다. Andreotti 안드레오띠는 194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총리와 장관을 여러 번 거친 거물 정치인인데 지금까지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남아있다. 그가 마피아와 얼마나 어디까지 관련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 몇차례나 법정에 섰지만 무죄가 되기도 하였으며 결국 죗값을 치른 것도 없다. 

그의 인터뷰 장면들을 영화에서도 보여주는데, 그는 항상 조용하다고 할 만큼 조근조근하게 말을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강한 주장을 펼치는 일도 없으며 언제나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한다.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BBC 셜록 시리즈 3시즌에 나오는 Charles Augustus Magnussen 과 같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파워인 인물과 비슷하다고 상상하면 된다. 



저널리스트가 꿈인 순수한 아르투로는 언론을 통해서 비춰지는 안드레오띠의 모습이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안드레오띠를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며 안드레오띠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은 더욱더 커진다. 



영화는 그 시절의 팔레르모에서 지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마피아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익숙해지는지 아르투로를 통해 그려낸다.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없던 시절, 아르투로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들은대로, 집에서 부모에게 물어보면 답변해 주는대로 그대로 믿는 아이다. 아빠에게 자기 전에 마피아가 위험하냐고 물어보는 아르투로에게 아빠는 '아니 위험하지 않아. 개를 조심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된단다. 니가 먼저 다가가거나 위협을 하지 않으면 그들도 너를 건드리지 않는단다' 라고 말하며 '걱정마렴, 지금은 겨울이잖니. 마피아는 여름에만 죽인단다' 는 얼토당토 않은 대답을 준다. 어린 아르투로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아빠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아빠의 아르투로에 대한 답변을 보면 마피아가 얼마나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 속 깊숙히 박혀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피아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이미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인드는 아르투로 세대에도 물려지게 된다. 




이탈리아 중앙정부가 팔레르모의 마피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 판사, 정치인들을 보낼 때 마다 마피아들은 이들을 모두 살해한다. 길거리에서 총으로 죽이고, 차안에서 죽이고, 폭탄으로 죽인다. 팔레르모에 내려가면 전부 살해를 당하는데 누가 내려와서 어떻게 해결을 하겠는가 하는 점만 봐도 마피아는 쉽게 해결되기가 어려운 문제다. 반마피아 활동을 위해 팔레르모에 파견되었던 제너럴 Carlo Alberto Dalla Chiesa 가 마피아에 의해 살해되고 모든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가했을 때, 안드레오띠는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 기자들이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Preferisco andare ai battesimi piuttosto che ai funerali» '장례식보다는 유아세례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는 모호한 대답을 남긴다. 이탈리아에서 보통 Battesimi 라고하면 뭔가를 시작하는 첫번째 스텝 같은 의미를 말하기도 하는데 그의 속내는 무엇이였을까. 


이탈리아에서는 보통 신문에 마피아 관련된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이들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마피아들이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아 뉴스에 얘기가 없는 것은 현재 모든 것이 마피아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이들을 잡아들이려 대치하거나 마피아들끼리 서로 이권과 권력다툼이 생겼을 때만 마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온다. 




짝사랑 하는 플로라 Flora 의 책상에 Iris 이리스를 말없이 몰래 올려놓던 아르투로도 성장한다. 그리고 스위스에 갔던 플로라가 팔레르모에 돌아온다. 그리고 팔레르모 부근의 작은 마을 Capaci 카파치 근처의 도로에서 마피아 수사의 큰 전환점과 변화를 일으켰던 거대한 폭발살해사건이 발생한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Capaci 라고 하면 이 사건을 떠올린다.



Strage di Capaci 출처 wikipedia


성인이 되어 아들이 탄생하는 순간 아르투로는 본인의 부모로써 두가지 미션을 언급한다. 하나는 나쁜 것으로부터 순수한 아이를 보호하는 의무와 다른 한가지는 나쁜 것을 구분해내는 것을 도와주는 의무에 대해 말한다. 생활에 젖어있던 마피아 문화를 그대로 물려주던 세대와는 다른 세상이 시작되어야 함과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것의 중요성으로 영화는 교훈적인 마무리가 된다.

 


이탈리아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느리긴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점점 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언론적으로 후진적인 이탈리아는 신문을 볼 때마다 한숨나오는 기사들로 가득하다. 또한 안드레오띠 같은 정치인이 40년을 넘게 정치에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이탈리아 정치가 얼마나 뿌리깊게 부패해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마피아에 대항하고 희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쁜 것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의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까지도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로마에있는 시칠리아 제과점들을 찾아다니며 이리스 Iris 탐색에 나섰다. 영화에서 어린 아르투로가 짝사랑하는 플로라의 책상위에 몰래 올려두던, 그리고 다시 재회해서 들고 간 이리스 라는 팔레르모의 디저트. 'Un parlemitano che non conosce le iris alla ricotta? 팔레르모사람이 이리스를 모른단 말이냐?' 라고 Giorgio Boris Giuliano 경찰국장이 마피아에게 살해당하기 전 어느 아침에 아트루로에게 선물한 디저트다. 




Iris 이리스는 고로케처럼 생겼는데 발효시킨 반죽 빵안에 리코타로 만든 크림과 초콜릿이 들어있는 달달한 빵이다. 제과점들마다 고로케처럼 튀겨서 파는집도 있고 오븐에 구워서 파는 집도 있다. 부드러운 리코타 크림은 베어물때마다 행복해지는 맛이다. 아마 이 영화가 아니였다면 이리스를 맛보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피아는 이탈리아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며 여전히 현존하는 커다란 문제다. 그러나 아르투로가 아들의 손을 잡고 역사를 기억하러 다니는 것처럼 이리스를 먹을 적 마다 나 또한 이 영화와 그 이야기들을 떠올릴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