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벌꿀 May 27. 2020

<Il Sorpasso 추월> 낯선이와의 로드트립

60년대 초고속 경제성장 이후 이탈리아를 예견한 이야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옛날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지금과 그 때를 비교하는 것이다. 특히나 이탈리아처럼 변화가 없는 동네에서는 예전 영화들에서 보이는 건축물이나 장소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자리하고있다. 변한 것은 사람들과 자동차, 패션뿐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며 나오는 장소들을 알아맞추는 것도 이탈리아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큰 재미 중의 일부다. 


로베르토와 브루노


Il Sorpasso (한국어로는 추월을 의미한다) Dino Risi 감독의 이 영화는 1960년대의 이탈리아를 보여준다. 철없어 보이는 40대 Bruno 브루노와 그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어린 법대생 Roberto 로베르토가 8월 15일 Ferragosto 페라고스토에 로드트립을 떠나는 이야기다. 



Ferragosto 페라고스토 라고 부르는 8월 15일은 이탈리아에서는 상징적인 여름휴일이다. 보통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8월 15일을 기준으로 그 전에 여름휴가에 가거나, 그 주부터 여름휴가를 가거나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쨋든 8월 15일은 무조건 여름휴가를 떠나있는 날이다. 영화는 바로 이 날, 로마시민들은 모두가 휴가를 떠나 도시가 텅 비어 있는 날에 브루노가 전화를 빌려쓰려고 처음 만난 로베르토를 꼬득여 하루 로마에서 토스카나로 로드트립을 가며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다. 



이들이 따라가는 도로는 브루노의 차 Lancia Aurelia 와 같은 이름의 로마제국 때 닦아놓은 Via Aurelia 아우렐리아 도로다. 로마에서부터 해안가를 따라 프랑스까지 이어지는 상징적인 길이다. 영화에서 이 둘은 이 길 위에서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을 만난다. 도로를 달리다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잠깐 멈춰 어떤 이를 만나기도 하고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매듭짓고 그리고 다시 도로위로 돌아와 달린다. 

도로를 달리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모든 것들의 운명같아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브루노와 로베르토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이탈리아인이다. 인생에서 별로 중요한 것은 없으며 순간을 즐기고 매일을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한 브루노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특히 로마 사람이다. 삶에 있어서 통찰과 반성이나 고찰 따위는 없으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거리낌 없이 하면 된다는 태도, 그러나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스무스해서 문제를 일으켜도 여유롭고 능글맞게 넘어가는 행동들은 지금도 보통적으로 떠오르는 로마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런 브루노는 마치 60년대 한창 이탈리아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영화의 배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모두가 돈을 벌고 있었으며 오늘 직장상사가 마음에 안들면 당장 그만두고 내일 다른 직장에 나갈 수 있던 그런 때다. 누구나 여름에 쉬다 올 수 있는 여름별장 하나씩은 장만하던 때이니 지금과는 현실이 많이 다르던 시절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었고 모두 여유있고 행복하고 이탈리아의 모든 것이 잘 굴러가는 듯 해 보였다. 마치 브루노처럼 말이다. 좋은 것은 좋은것이고 행복하고 즐기면 되는 경제붐 세대의 모습이다. 어찌보면 많은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지금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이기적인 태도는 이런 배경 때문일지도 싶다. 무엇이든 심각함이 없으며 본인 좋을대로 흘러가는 대로 대강대강, 대충대충 해치우는 식의 마인드같은 것들 말이다. 여유롭던 그 시절의 습관과 추억이 이탈리아의 그 이후 사람들의 태도에 그대로 들어나게된다. 



반면 브루노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조용하고 숫기도 없고 Ferragosto 8월 15일에 남들이 바다로 휴가를 가 있을 때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로베르토는 전쟁 이후, 삶을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이탈리아 사람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두 이탈리아의 면모를 영화는 두 사람의 하루 로드트립 스토리로 보여준다.



영화의 화면은 보는 내내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60년대처럼 문제가 있어도 어찌되었든 잘 풀어내게 되있으며 전부 잘 굴러가는 것같다. 그리고 삶이란 무겁고 지루한 것이 아닌 그저 흘러가는대로 브루노처럼 철없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를 받아들일게 될 때쯤 무엇인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결국 브루노는 위험한 커브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달리다 로베르토를 죽이고 만다. 



60년대 이후의 이탈리아를 영화가 예견했던 것 마냥, 초고속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60년대 이후 70년대무렵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여기저기 사회적으로 부패와 비리가 터져나온다. 누구나 돈이 쉽게 벌리던 시절, 돈에 대한 탐욕스러움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배경의 첫벽돌이 껴지는 시기가 바로 이탈리아의 60년대다. 


경제가 초고속으로 발전하던 그 시절에 이탈리아는 브루노처럼 삶에 집중하지 않고 많은 것을 놓쳐버린다. 모든 것이 잘 굴러가던 그 때에 더욱더 초점을 맞춰 국가를 경영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에는 운명같은 시간들이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는 철없는 브루노처럼 그 시기를 모두 놓쳐버렸다. 


하루사이에 일어난 해프닝처럼 심플해 보이는 영화는 이탈리아의 인생을 그려놓은 것처럼 보고나면 복잡한 심정이 든다. 영화의 제목 Il Sorpasso 추월 처럼, 결국 이후의 이탈리아는 브루노 경제붐세대의 문화가 진지하던 예전 이탈리아사람들 로베르토를 추월해버린 것같다. 그리고 그 세대의 문화가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남아있음을 예견한 이 영화는 오늘날 봐도 다시한번 명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칠리아 디저트 이리스를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