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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꿀 Jun 03. 2020

진짜 배신자는 누구인가

<Il traditore 배신자> 시칠리아 마피아의 실체를 밝히는 실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마피아에 관련된 영화는 그 시대의 배경에 대한 정보없이 감상하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 있다. 더욱이 러닝타임이 꽤나 긴 이 영화같은 경우,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나 이탈리아 사람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영화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으며 시칠리아 마피아에 대한 기본적인 큰 틀로써의 개념과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 <La mafia uccide solo d'estate 마피아는 여름에만 죽인다> 를 보길 추천한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이 연결되어 <Il Traditore 배신자> 영화를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80년대 배경의 실제 있었던 마피아 멤버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 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시칠리아 마피아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중요한 증언과 정보를 제공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Pentito (di mafia) 펜티토 라고 하는데 정부에 협력하는 정보제공자로 마피아의 세계에 대해 처음 입을 연 그와 그세계의 이야기다. 


영화 시작부분에서 알려주는 대로 80년대 팔레르모는 지하세계의 중심지였다. 모든 남미에서 브라질로, 브라질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그리고 시칠리아에서 온 유럽으로 마약을 나르는 마피아들이 존재하는 헤로인의 세계적 중심수도가 팔레르모였다. 그리고 그 당시 팔레르모에는 Corleonese Nuova Mafia, 코를레오네 Corleone 출신의 새로운 신흥세력 마피아와 팔레르모의 올드스쿨 구세력 마피아 Palermitana Vecchia Mafia 가 있었다.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는 흔하게 마피아 라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아이와 여자는 죽이지 않으며 조직의 룰을 지키는 것을 최고로 중요시 여기는 올드스쿨 마피아다.


(팔레르모 근처의 작은 타운인 Corleone 코를레오네는 영화 The Godfather 대부에 나오는 돈 비토 코를레오네 Don Vito Corleone의 이름으로 익숙할 것이다)



가족을 중시하는 올드스쿨 마피아의 문화에서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는 두번의 이혼을 하고 세번째 부인과 또 다른 가족을 꾸렸으니 조직에서는 어쨌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조직의 본거지인 팔레르모에 있기는 어려웠다. 그가 남미에 가 있던 것을 보면 올드스쿨 마피아의 룰이 상당히 폐쇄적이였던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가 브라질에 있는 동안 Totò Riina 토토 리이나 (Salvatore Riina)의 신흥세력이 팔레르모를 모두 자신들이 장악하기 위해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가 속해있던 구세력의 조직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정부 관련 인사들까지 숙청하기 시작한다.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의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들도 이 과정에서 살해당한다. Riina 리이나는 추후의 싹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며 구세력 조직원들 가족의 20촌까지 찾아내 모두 살해하도록 지시한다. (Totò Riina voleva ammazzare i loro bambini fino al ventesimo grado di parentela) 


어린아이와 여자는 건드리지 않으며 보통 일반시민과 정부인사는 살해하지 않는 마피아의 룰 따위는 상관없이 말이다.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는 브라질에서 마약 혐의로 체포되어 84년 이탈리아로 송환되며 그는 마피아를 수사하고 있는 Falcone 팔코네 판사를 만난다. 


영화는 워낙 상황이 장황해 무슨 얘기인지 싶을 수도 있으나 크게는 올드스쿨 마피아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와 헤로인과 권력에 눈먼 신흥 마피아세력의 이야기 관점에서 보면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꿈인지 환영인지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의 온가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를 관에 넣는 장면은 Omertà 오메르타 라고불리는 마피아들의 침묵의 룰을 그가 깰 것임을 암시한다. 80년대 당시, 오메르타를 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영화 중간에 나오는 장면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남편이 신흥세력에 살해를 당한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의 여자형제는 마피아에 대한 분노보다 오메르타를 깬, 정부에 협력을 한 부셰타를 더이상 가족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름도 부르지 않으며 '그 남자'라고 호칭하며, 용서받지 못할 그런 인간으로 언급한다. 마피아 멤버가 아닌 보통의 일반 시민이 얼마나 마피아문화에 사고방식이 맞추어져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당시 마피아를 수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겠는가. 아무도 증언하지 않고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마피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그런 때다. 



마피아를 수사하는 Falcone 팔코네 판사와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가 만나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부셰타는 <La mafia non esiste. 마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la mafia è un'invenzione giornalistica. 마피아는 언론이 꾸며낸 허상이다> <Cosa Nostra, si chiama. Noi uomini d'onore la chiamiamo così. 우리처럼 조직에 맹세한 이들은 Cosa Nostra 라고 부른다> 라고 입을 연다. 


Cosa Nostra 는 이탈리아어 그대로 우리의 것이라는 뜻인데 시칠리아의 마피아 조직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우리의 것이라는 의미가 이해가 가는데, 부셰타는 이어서 <Cosa Nostra aveva dei valori, proteggere la povera gente. 꼬자 노스트라 Cosa Nostra 는 중요성, 미션, 진가가 있었다.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는 것말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문장대로 올드스쿨 마피아들 중에서는 실제로 자신들이 하위층을 돕는, 조직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이들도 있었다. 마피아를 피라미드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의 작은 정부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국가의 법률처럼 그들의 세계에서는 따라야 하는 엄격한 룰이 있었고 조직원들은 그 룰 밑에서 조직을 따랐다. Falcone 판사가 마약을 퍼트리는 것이 사람들을 돕는 일이냐고 되묻는 것처럼 말이 되는 소리냐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시칠리아라는 작은 섬을 우리들의 것(Cosa Nostra), 우리들의 땅, 우리들이 보호하고 지배하고 컨트롤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마치 하나의 국가 정부처럼 그들은 조직되어 있었고 이런 범죄조직 시스템은 일반 시민들의 삶 속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한 주목할 점은 이런 올드스쿨 마피아들은 항상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탈리아 중앙정부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도록 그들은 항상 적정선을 지키며 어두운 일들을 하였고 조직원과 일반 시민들의 오메르타 침묵의 문화를 바탕으로 시칠리아는 항상 마피아 그들에게 속해있던 그런 곳이다. 그러니 그 당시에 베네치아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저 남쪽 밑 시칠리아에서 이런 엄청난 범죄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 예로 들자면 한국의 신천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신천지의 존재를 몰랐을 많은 사람들이 큰 문제가 터지고 나서 보니 신천지가 사회 곳곳에 얽혀 영향력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과 비슷하다.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는 정부에 협력해 Riina 리이나를 보스로 한 신흥세력 마피아와 시칠리아에 존재하는 이 범죄조직의 실체를 밝히는 증언들을 잇는다. 마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올드스쿨 조직원인 그가 어쨋든 시칠리아 마피아의 존재를 입증하는 모습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게 되는 느낌이 든다. 그는 마피아의 존재에 대해 처음 입을 연, 첫번째 거대한 증인이였다. 


영화는 이탈리아 법정의 모습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아무런 사진이나 녹음, 증인 증거없는 상황에서 일일이 마피아 조직원들과 증언에 대한 공방을 벌여야 하는 그 당시의 법정상황은 그 시대 이탈리아인의 시선과 상상을 기반해 화면을 따라가야한다. 


그리고 부셰타가 말하던 <Ci sono uomini d'onore non solo in Sicilia ma anche qua a Roma. 조직에 맹세한 사람은 시칠리아에만 있지 않다, 여기 로마에도 있다> 즉 정치인 중에도 마피아가 있다던 그와 마피아 정치인으로 의심받는 안드레오띠 Giulio Andreotti 가 법정에 있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안드레오띠의 법정 장면은 한국의 법조계를 떠올리게 하는데 증인으로 나온 부셰타에게 정치인 안드레오띠의 혐의와는 전혀 무관한 얘기를 꺼내는 그의 변호사와 그것에 동조하는 판사의 모습을 보면 부패한 정치와 법조계와 마피아의 연관성이 보여진다. 



Tommaso Buscetta 톰마소 부셰타는 법정에서도 '나는 배신자가 아니며 나는 여전히 Cosa Nostra 를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룰을 지키지 않은 것은 Riina 리이나 신흥세력 마피아들이라고 말이다. 더 큰 권력을 위해 어린아이와 가족, 경찰, 판사 등 가차없이 살해하며 마피아가 가지던 리스펙트, 룰 따위는 따르지 않는 그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부셰타는 자신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것,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마피아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Riina 리이나 신흥세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인사와 일반 시민들까지 살해하며 일을 크게 벌린 Riina 리이나 탓에 이탈리아 정부에서 시칠리아에 주목을 하게 되고 정부가 마피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것, 일반 시민들이 마피아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룰을 망치고 규칙을 무시한 탓이라고 비판한다. 



영화의 제목인 Il traditore 배신자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마피아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배신자는 권력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기 위해 그들의 룰조차 지키지 않은 Riina 리이나일까, 아니면 신흥세력이 마피아의 명예와 긍지를 파괴하는 것을 더이상 보지못하고 침묵의 룰을 깬 부셰타일까. 마피아를 곤경에 빠뜨린 진짜 배신자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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