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에도 넣어먹습니다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장을 보던 어느 날, 홍합과 봉골레 백합류 조개만 보이던 해산물코너에 맛조개와 흡사한 조개가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보던 것 보다 좀더 길쭉하고 껍질이 대나무같아 보였는데 느낌상 맛조개가 아닐까 싶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할 무렵, 가족 중에 유일하게 맛조개라면 사족을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내가 집에 내려갈 적 마다 집 아래 시장에서 싱싱한 맛조개를 사오셨다. 큰 솥만한 냄비에 망을 올려 맛조개를 쪄주셨는데 나는 그대로도 먹고, 초장에도 찍어먹으며 조개로 질겅질겅 그렇게 저녁을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는 내륙지역에 주로 있었고, 혼자 수산물시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해산물요리를 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않기 때문에 맛조개는 그저 한국 집밥의 추억이 되었다. 더군다나 맛조개가 이탈리아에도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봉골레나 홍합만 먹는 줄 알았지.
나는 대나무처럼 길쭉한 조개를 한망 집어 수산물코너 아저씨에게 '내일 먹을 건데 괜찮아요?' 라고 물으며 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는 대답을 듣고선 만족해하며 집으로 왔다. 이게 얼마만에 맛조개냐며.
조개는 쪄준것만 먹어봤지만 찌는게 대수겠냐며 나는 망째 냉장고에 넣고 내일 먹을 생각에 설레어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소금물에 담궈뒀어야 되는지, 냉장고가 너무 차가웠는지, 너무 뜨거웠는지 원인은 모르겠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짐작이 안되는 맛조개를 꺼냈다. 해감을 해야된다는 거는 들어봤는데 죽은거 같은데 해감이 되는건지 물로 그냥 씻으면 되는건지. 익혀서 모래를 털어도 되는건지. 에라 그냥 우선 익혀보자.
나는 얼마나 찌는건지도 모른채 조개를 아주 푹 익혔다. 익은 냄새도, 조개의 생김새도 맛조개가 분명하다는 신념을 가지며. 다만 나의 맛조개는 먹으면 입에서 모래가 자글자글 씹혔다.
그날 처음 만난 이탈리아의 맛조개는 Cannolicchi 칸놀리끼 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먹던 맛조개보다 더 길쭉하니 대나무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죽합, 대맛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보통 팬에 마늘과 올리브오일을 넣고 익혀 파슬리나 레몬을 뿌려먹거나, 살만 발라서 파스타에 넣어먹는다. 다만 먹는 사람만 먹는 음식이랄까, 식당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보이는 재료는 아니다.
이탈리아 맛조개의 존재를 알고나서 나는 드물게 식당 메뉴 중에 맛조개가 보이면 꼭 맛보고는 한다. 익은 조개의 맛은 어떻게 먹어도 항상 맛있다. 다른 조개류나 해산물과 섞어 먹어도 맛있고 그걸 파스타에 넣어도 맛있고 그 자체로만 먹어도 훌륭한 맛이다. 다만 언제나 이탈리아의 맛조개를 먹을때면, 큰 솥에 어머니가 쪄주신 조개를 손으로 까먹던 추억대신 모래가 자글자글 씹히던 그날이 떠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