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로니가 피자토핑은 아니구요,
분명히 본적이 없던 재료인데, 어느순간 익숙했다는 듯이 식탁에 오르는 음식 재료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파프리카가 그러한데 언제부터인지 기억에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여름이면 파프리카와 오이를 썰어넣어 샐러드처럼 만들어 먹었다. 녹색의 피망이라면 지금도 탐탁지 않아하지만 색깔도 알록달록 예쁘고 맛도 단맛이 나는 파프리카는 먹다보면 과일을 먹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파프리카라고 부르는 이 채소는 이탈리아에서는 페페로니 Peperoni 라고 부른다. 페페로니 피자가 워낙 유명하니 기억하기 쉬운 이름인데 (실은 페페로니 피자는 Pepperoni 지만) 피망이나 파프리카나 이런종류는 일단 페페로니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페페로니는 한국에서 보던 주먹만하고 앙증맞은 파프리카와는 차원이 다르게 굉장히 거대한 것부터 좀더 작은 것까지 크기나 모양도 다양하다. 큰것은 손목에서 팔꿈치 길이 만하다.
이 거대한 파프리카 요리법을 알게 된 것은 모니카 덕분이다. 그녀는 예전 직장동료로 맛있는 것을 만들고 멕이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를 가졌다. 그녀의 파트너 단테의 생일날, 저녁식사 초대로 집을 방문했다. 요란하고 유쾌한 모니카가 모든 저녁메뉴를 준비했는데 딱 한가지, 파프리카를 사용한 요리는 단테가 그 만의 스폐셜 레시피대로 준비했다며 모두 신나게 저녁을 시작했다.
단테가 만든 파프리카요리는 Peperoni alla griglia , 말 그대로 구운 페페로니로 파프리카를 오븐이나 그릴에 구워 겉 껍질을 벗기고 살을 쭉쭉 찢는다. 그리고 마늘 한톨을 아주 잘게잘게 다져서 파프리카에 넣고 질좋은 올리브오일과 줄기째 말린 오레가노를 슬슬슬 뿌려 섞어주면 된다. 취향에 따라 올리브나 엔쵸비를 넣는 사람도 있고, 마늘을 안넣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는 생으로만 먹던 파프리카를 구워서도 먹는 다는 것은 이탈리아에 와서야 알았다. 구워서 보들보들해진 파프리카는 입에서 훨씬 부드럽고 달았다. 그리고 재료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올리브오일까지. 그날 배운 단테의 레시피가 여전히 나에게는 최고의 파프리카요리 레시피다. 마늘한톨과 파프리카와 오레가노의 조합은 언제든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