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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페퍼 Apr 14. 2021

8년 만에 찾은 홋카이도

난 겨울이 좋아

2018-19년엔 출장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줄줄이 있던 출장들 사이에 잠시 겨울 홋카이도를 보러 가기로 했다. 2011년 여름 이후 8년 만에.

 

ICN-CTS LJ231 0835-1115

즐겁게 떠난 여행이지만 신치토세공항 이미그레이션 줄 설 때부터 이미 짜증이 났다. 좁은데 줄 선 사람은 많고, 교대시간인지 직원들은 카운터를 하나둘씩 닫아 버려서 어떤 줄은 굉장히 길어지기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담당 아저씨가 여권을 엄청나게 뒤적거렸다. 출장 때 받았던 비자들이 많아서 아마 유효한 비자를 찾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비자 없이 왔다고 말하려는 찰나,

- 콘카이와 칸코데..? (이번에는 관광으로..?)

- 하이, 소오데스. (네, 맞아요.)

진작 말할걸 그랬다. 심사받는데도 오래 걸렸는데 짐은 굉장히, 더 늦게 나왔다.

난 왜 진에어를 탔을까. 수하물 무게 제한 때문에 핸드캐리 하는 짐도 많아서 이미 몸이 너무 힘들었다. 손에 든 것들을 가방에 넣으려고 열었는데, 아랫부분 지퍼 쪽이 심상치 않아서 살펴보니까 손가락 길이 하나만큼 뜯어져 있었다.

후.. 이 캐리어로 말할 것 같으면 직전 출장에서 나름 튼튼했던 내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가방이 깨진 채로 인천에 도착했고, 그 보상으로 대한항공에게 받은 싸구려 캐리어였다. 그때 생각이 나는 것도 짜증 나는데 새로 받은 가방이 얼마 가지 않아 또 터지다니!


3층 진에어 카운터를 찾았다. 자기들은 저가 항공사라서 보상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자보험 가입했으면 보상받을 수 있게 서류를 써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서류 가지러 간 직원이 또 함흥차사... 빈 서류를 가지고 나타난 한국인 직원에게 또다시 처음부터 설명을 하고 겨우겨우 서류를 받았다. 이미 나는 땀범벅이 되었다.

 

버스 타는 곳을 찾으러 국내선 청사를 지났다. 가게들이 짱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 암튼 타는 곳은 1층이라고 해서 내려갔는데 찾지 못해서 짐을 끌고 다시 올라와 인포에 물어봤다. 다른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야 하는 거였다. 처음부터 물어볼걸.


버스표를 샀고, 곧 버스가 왔다. 그래.. 일본의 공항버스 이렇게나 좌석이 좁았었지. 사람도 많아서 혼자 앉을 수는 없었고, 일본인 아주머니 옆에 앉았다. 가뜩이나 부피가 큰 옷을 입고 가서 너무 불편했다. 아줌마께도 죄송..

내가 탄 곳이 국내선 청사 버스 타는 곳이어서 그나마 좌석 여유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정류장에서 타는 한국인이 많았는데, 자리가 부족해서 결국 보조석을 열어서 앉은 사람도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1시간도 넘게 걸렸다. 불편하기도 했고, 이미 공항에서 예상 밖의 일을 겪어서 진이 다 빠졌다.




미나미산조 스스키노 정류장에서 하차 후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체크인할 수 있었다. 방에 들어와서 저녁에 징기스칸을 먹기 위해 아루코에 전화로 예약을 시도했다. 오늘 저녁은 어렵고, 내일은 카시키리(전체 대관)라고 해서 "한 명인데 어떻게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아, 한 명이면 오늘 아무 때나 오세요."라고 하셨다. 나이쓰ㅋㅋ


필름 카메라를 가져갔기 때문에 호텔 근처 돈키호테에서 필름 구매를 시도했으나 팔지 않았다. 근처의 카페 랑방 을 찾아가서 소프트 블렌드 커피와 타마고 산도를 먹었다. (세트 960엔)


필름을 팔 만한 곳을 찾아보니 삿포로역 근처에 요도바시 카메라가 있었다. 감도 200 짜리를 사는 게 목표였는데 없었다. 고민하다가 400 x 3 롤, 100 x 3 롤 샀다. 삿포로역 간 김에 오타루 가는 열차 미리 구매하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그냥 지나쳤다.


걷다 보니 아카렌가가 나왔다. 까마귀 울음 속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눈이 후두둑 내렸다. 오오도리 공원은 눈 축제가 끝나고 치워둔 눈으로 전혀 예쁘지 않았지만, 쌓인 눈이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카렌가와 오오도리 공원


오오도리 공원에서 엄마, 조카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화면 속에 나오는 내 얼굴 세상 신나서 웃겼다. 축제가 끝나서 아무도 찾지 않는 오오도리 공원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면서 자유를 만끽했다.

동선에 과자점들의 많았지만 카페에서 먹은 샌드위치가 아직 안 꺼져서 굳이 가지 않았다. 좋은 것도 땡길 때 먹어야지. 억지로 먹지 말기로...


다시 호텔에 와서 잠시 쉬다가 다시 엄마랑 영통하는데 엄마가 나 엄청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혼자 쉬러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그런지."라고 덧붙이면서. 그런가 보다. 내가 봐도 활짝 웃는 내가 신기했다.


저녁 8시에 예약해 둔 아루코에 갔다. 근데 세상에! 설마 설마 저 가운데 자리가 내 자리일 줄이야! 凹 모양의 카운터석의 정 중앙에 앉게 되었다. 휴.. 어쩔 수 없지.. ㅠ_ㅠ

징기스칸 1인분과 양스지니코미를 주문했다. 고기는 맛있었는데 너무 빨리 구워지는 바람에 급하게 먹었다. 그래서 1인분을 추가했는데, 추가한 1인분은 마지막엔 좀 힘들게 먹었다. 고기 2인분과 니코미는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았다. 다 먹고 나왔는데 아이스크림이 땡겼다. 생각해두었던 피푸루피푸 쪽을 지나가는데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안에도 대기인원이 있을 텐데...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오던 길에 소프트크림 집이 있어서 하나 주문했다. 근데 계산만 하고 아이스크림을 안 준다..? 좀 기다리다가 아직이냐고 물어보니 아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제야 준다. 정신 차려 얘들아...


호텔은 밤에 야식으로 소바를 주는데, 들어오는 길이 마침 시작 시간이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람 짱 많아 ㅎㅎ 근데 숙박자인지 검사도 안 했다. 양고기를 먹어서 약간 느끼한 속을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근데 내일부터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후루룩 먹고 들어와서 티비를 봤다. 아리요시를 속이는 것, 숙면을 취하는 방법 뭐 이런 것들... 별 거 아닌데 재밌었다.


삿포로 시내에 도착하기 전까지 힘들었지만 역시 휴가는 휴가다. 맛있는 거 먹고 아무 생각 안 하고 돌아다니고 너무 좋았다. 12 넘어서 씻으러 대욕장 갔는데 그때도 사람이 많았다. 대욕장이지만 별로 안 크기도 하고..

원래 탕에 오래 못 있는 타입이라 5분도 못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좋았다.



(2019년 2월의 여행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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