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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페퍼 Apr 14. 2021

삿포로 시내 탐방

어쩌다 보니 20km를 걸었다

둘째 날,

호텔 조식 최종 입장 시간은 9:30이었는데  아침이 되니 막상 일어나기 싫어서 미적거리다가 씻고 외출 준비까지 끝내고 9:10쯤 식당으로 갔다. 대기 인원이 많아서 20분 넘게 기다렸다. 듣던 대로 메뉴가 많았는데 자칫하다간 일을 그르칠 것 같아서 아주 조금씩 야무지게 떠다 먹었다.


모리히코라는 카페를 가기 위해 눈이 깨끗이 치워지지 않은 길을 40-50분 정도 걸었다. 눈길에서 넘어진 일이 많아서 눈길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조심해서 걷긴 했지만 생각보다 길이 미끄럽진 않았다. 신기해..


모리히코에는 11:20 쯤 도착했다. 2층은 아니지만 다행히 1층이 비어 있었다. 만세! 자리 없을까 봐 걱정했다.  

미싱을 개조한 듯한 작은 테이블은 앉아보니 너무 좁아서 큰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큰 테이블 맞은편 대각선 쪽에 앉은 여성 앞에는 곧 썸남이 도착했는데 대화 너무 화기애애했다. 엿들어서 미안해 ㅠㅠ 근데 너무 잘 들렸어..

모리노시즈쿠라는 이름의 원두로 내린 커피와 갸또 프로마쥬 세트를 주문했다. 모리노시즈쿠 맛있었다. 밸런스가 좋았다. 갸또 프로마주도 맛있었다. 여태껏 알던 것과 다른 맛…

옆엔 대화 삼매경인데 난 말할 사람 없어서 일기를 열심히 썼다. 오랜만이다 이런 여유. 그리고 역시 난 추운 게 좋다.

 



다음 행선지는 마루야마 공원.

눈이 완전 많이 쌓였다. 왕 좋음! 눈밭에 간간히 눈사람도 있고 아마도 눈 치우느라 만들어졌을 작은 눈더미에서 썰매 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까마귀가 완전 많았다. 8년 전 하코다테에서 까마귀가 가라아게를 훔쳐가서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나면서 '나무 많은 곳에서 뭐 먹다간 까마귀가 채간다!'며 혼자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 학생들이 까마귀에게 당했는지 꺅꺅 소리를 질렀다. 무섭지 무서워 ㅎㅎ


홋카이도 신궁이 근처에 있어서 가봤는데 눈에 둘러싸인 경치가 좋았다. 현지인들과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원래라면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는 시간인데, 배도 안 고프고 해서 우선 또 걷기로 한다.

신궁 앞에는 너무나 정직하게 진구마에치과.. 이런 이름의 간판들이 있고, 오다 보니 도리이마에 어쩌구.. 이런 가게들이 있었는데 도리이? 하는 순간 거대 도리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ㅎㅎ 도리이마에 맞네요.


한 시간가량 걷고 배가 꺼질 즈음이라 밥을 바로 먹으러 갈까 하다가 눈길을 너무 많이 걸었는지 피곤해서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눈이 많았는데, 그래도 주머니 손 안 넣고 팍팍 걸으면서 왔다. 조심조심 하지만 팍팍. 근데 주머니에 손 넣는 거 진짜 고치기 힘들다. 신호 대기하면 무조건 손을 넣게 된다. 여기 사람들은 다 장갑 끼고 주머니에 손 안 넣고 팍팍 걸어 다닌다. 눈길 조깅도 하는데 말 다 했지.




약간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아서 도보 7-8분 거리의 부타동 가게 마무로에 갔는데 5시부터 영업 재개한다고 ㅠㅠ 역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지.. 브레이크 타임인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삿포로역 먼저 가기로 하고 당 떨어지지 않게 키타카로와 롯카테이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키타카로 건물 멋졌다. 시식이 많다고 하던데, 강냉이류 밖에 없어서 약간 실망쓰.. 다들 앉아서 아이스크림 같은 거 드시길래 나도 먹을까 하다가 삿포로 본관 한정 크로아상 슈를 먹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먹기 불편했지만 겉바속촉! 맛있었다. 특히 슈크림이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 내용물은 똑같을 테니 오타루가서도 슈크림 먹어봐야지! 슈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오타루 료칸을 먹방천국으로 만들겠다.


아카렌가를 가로질러서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른 느낌) 롯카테이 본점에 갔다.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거의 다 일본인이었다. 키타카로도 그랬다. 롯카테이의 2층 카페 좋아 보였다. 키타카로의 900엔 디저트 세트도 좋아 보였는데 다 즐길 시간이 없는 것이 아쉽다. 마르세이 아이스산도(200엔)과 커피(100엔이라 안 시킬 수가 없었음)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데 너무 더워서 커피는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 100엔이라 부릴 수 있는 사치 ㅎㅎ


삿포로역 가는 길에 필름을 다 써서 길에 잠깐 서서 교체하는데 아뿔싸.. 감도 100짜리를 400에 놓고 신나게 찍었다. 너무 짜증나고 우울하고.. 아 그래도 나쁘지 않게 나왔으면 좋겠다 제발.

삿포로역은 복작복작했다. 나도 많이 단련됐는지 8년 전 느꼈던 그런 복잡함은 아니었다. 미도리노마도구치에 가서 오타루로 가는 표를 구매했다.

자유석으로 주려는 거 지정석으로 달라고는 했는데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 얘기를 못했네. 이건 나중에 오타루에서 공항 가는 표 끊을 때 시도해보자. 떠나오기 전에 친구 S가 오미야게 가게에서 파는 커피우유가 맛있다고 했는데 찾지 못했다.


삿포로역에서부터 큰길로 쭉쭉 걸어서 오오도리도 지나고 타누키코지도 지나고 스스키노도 지나고  각종 캬바쿠라와 유흥업소들을 지나서 마무로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완전 요상했다. 다 뭐 소프 어쩌구, 소프 랜드, 소프 레이디 이런 가게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목욕탕 같은 데서 하는 안마.. 넴 터키탕.. 이라고 한다. 하.. 너무 싫었는데 막판엔 내가 왜 피해야 되냐는 생각으로 씩씩하게 지나쳐 갔다. 구글은 왜 이 길을 알려주는 거죠? 쒸익쒸익-


암튼 마무로에 도착! 6시쯤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할부지가 고기 굽는 것 같고 아들뻘인 다른 할부지가 서빙했다. 미스치루가 나오는 부타동 가게란 ^^ 라디오였지만 그래도 좋았음. 카운터 구석에 앉아서 부타동을 흡입하고 있을 때 부자로 보이는 2인이 들어왔고, 나올 때쯤 중장년 남녀 2인이 들어왔다. 두 팀 다 좌식에 앉았는데 아드님은 계속 무릎 꿇고 앉아 계시더라.. 후 그렇게 해서 밥이 넘어가나? 엄청 불편해 보였다.

부타동(1200엔)을 먹었는데, 죠부타종(1560엔)먹을 걸 그랬다. 그럼 고기가 더 맛있었겠지. 아버님이 부타동이랑 죠부타동 차이를 물어봐서 알게 되었는데 나도 물어보고 시킬 걸. 내가 먹은 것도 충분히 맛있었다.

나메코, 두부가 들어있는 미소시루와 단무지 2조각이 나온다. 고기 양념이 엄청 짰는데 그 양념이 밥에 스며들어 절묘하게 간이 맞았다. 흐아… 아주 밥이 꿀떡꿀떡 넘어감. 밥 한 숟갈 정도 남기고 다 먹었다. 다 먹을 수 있었지만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 참기로 한다. 다시 사람 없는 거리를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와 호텔 로비에서 커피 한잔 뽑아서 들어왔다.




가보고 싶었던 가게 버드워칭을 슥 지나가는데 카운터석이 만석. 어제 한가했는데 아쉽다. 밀크무라에 먼저 도전. 다행히 카운터에 한자리(사실은 2인 자리)가 비어 있어서 겟챠

아이스+리큐르 3종 나오는 B세트를 시키려고 했는데, 앉자마자 A세트가 오스스메(추천)라고 해서 그걸 시켰다. 그리고 욕심이 나서 리큐르 추가했다. 고른 리큐르는 발렌타인 30년, 스위트 계열 1, 2위를 기록한 블랙베리와 고디바. 홍차 리큐르는 기본 서비스로 나온다. 아이스크림에 리큐르를 얹어 먹으니 쌉쌀하니 맛이 괜찮다. 아이스크림 자체가 크리미 하지 않고 상큼한 느낌이어서 리큐르들이랑 완전 잘 어울림. 어떤 블로그에 보니 아이스크림에 감귤류의 재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좋았다. 리큐르 중에 가장 좋았던 건 발렌타인!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독함이 사라지고 향긋함만 남는다. 고디바도 달콤하니 잘 어울렸고, 블랙베리도 맛있었는데 너무 달았던 것 같다. 세트로 나온 꾸덕한 요거트와의 조합도 정말 괜찮았다. 아이스는 리필이 가능해서 부탁했는데 오히려 처음보다 많은 양으로 주신 싸장님. 먹다 보니 리큐르 땜에 입안이 얼얼한 건지 아이스 땜에 그런 건지 모를 정도 (둘 다임 ㅎㅎ) 먹다 보면 쁘띠쁘띠한 잔에 커피와 핫쿠키 1개를 주신다.. 코..코알라..!! 쿠키는 귀여웠지만 맛은 그냥 그랬다. 커피는 입가심으로 좋았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10인 단체가 왔다. 타이밍 좋았다.


오는 길에 또 버드와칭 리벤지 시도했는데 여전히 카운터석 만석. 아 그래도 너무 가고 싶은데!! 우선 호텔로 돌아와서 다시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기로 한다.. 이 시점에서 양질의 수면을 포기했다.

찾아보니까 2층에도 카운터석이 있다고 해서 11시쯤 다시 도전! 근데 들어가자마자 "쏘리 고멘나사이". 2층을 보니까 불이 꺼져있다. 2층은 마감한 것 같았다. 차라리 일찍 들이대 볼걸 바보바보. 아쉬운 김에 다른 집에서라도 야키도리를 먹고 싶어서 쿠시도리라는 평 괜찮은 체인점을 찾아갔는데 00:30까지 영업인데 대기하고 있는 팀이 있었다.. 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호텔 가서 일찍 쉬라는 계시로 알고..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삿포로 클래식 롱 캔이랑 이것저것 사서 한잔했다. 어제는 버드워칭 지나갈 때 사람 없었는데.. 징기스칸 먹은 후라서 도저히 무리였다. 다음에 또 삿포로 오라는 뜻으로 알아야지 뭐.



(2019년 2월의 여행일기입니다)

그러나 갈 수 없었다고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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