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관계가 전무했음에도
저런 유형의 사람들을 겪게 되는 일은 있다.
선택한 적도 없고,
원한 적도 없으며,
피할 이유조차 알기 전에
송사와 절차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세상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왜 아무 관계도 없던 사람이
타인의 시간을 이렇게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왜 끝난 사건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는지,
왜 책임보다 절차가 오래 지속되는지.
이 질문들은
세상이 생각보다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세상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며 알게 된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일정한 방식으로만 행동하는 소수의 유형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간을 자원처럼 쓰지 않고,
끝을 인정하며,
관계를 선택과 합의의 영역에 둔다.
저런 사람들을 겪지 않기 위해
세상을 닫을 필요는 없다.
다만 구분할 필요는 있다.
누가 관계를 맺는 사람이고,
누가 접속을 시도하는 사람인지.
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고,
누가 끝을 유예하려는 사람인지.
이 구분이 가능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전보다 덜 위험해진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완만하거나 친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는 있다.
관계가 없어도 겪게 되는 부당함이 존재하더라도,
세상 전체가 그 방식으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저런 유형은 있다.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회의 속에서도
세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게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조심해야 할 곳이지만,
그래도 살 만한 곳이다.
.... 과연?
쩝
아직은, 그렇게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