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에 말렸을 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by Peppone



이 글은 요령을 설명하지 않는다.

위로도, 조언도 아니다.

송사에 말렸을 때 실제로 빠져나오게 하는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한다.


이 방식은 쉽지 않다.

오히려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가 통과한 결론은 분명하다.

다른 선택지는 작동하지 않는다.



송사에 말리는 순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먼저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개시권을 넘겨주는 순간,

사건은 다시 시작된다.



다음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감정의 언어다.


억울해도 쓰지 않는다.

분노해도 남기지 않는다.

설명하고 싶어도 참는다.


대신 남기는 것은 이것뿐이다.


날짜.

행위.

결과.

공식 문서.


느낀 점은 기록하지 않는다.

발생한 사실만 남긴다.


이 선택은 인간적으로 가장 어렵다.

그러나 송사에서는

유일하게 통하는 언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유혹은

사건을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러는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은지.


이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말린 상태다.


그래서 나는

상대를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설득하지 않았고,

공감하지 않았고,

설명하지 않았다.


절차로만 대응했다.


냉정해 보이지만

이게 유일한 출구였다.



상대가 자신의 상태를 전면에 내세울 때도

같은 원칙을 유지했다.


힘들다는 말,

아프다는 서면,

치료 기록.


그 어떤 것도

사건의 중심으로 들이지 않았다.


상태는 배경이다.

행위만 남긴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사건은 다시 늘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끝났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말 자체가

다시 송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나는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끝난 상태를 유지했다.


불송치는 그대로 두고,

공탁은 그대로 두고,

문서는 말하게 두었다.



이 방식은

빠르지 않다.

위로가 없다.

사람답지 않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행동을

전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싶고,

소리치고 싶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상대를 살리고

나를 더 깊이 말리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버텼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결론은 단순하다.


송사에 말렸을 때

유일하게 작동하는 방식은 이것뿐이다.


먼저 아무것도 개시하지 않고,

감정을 버리고,

행위만 기록하며,

절차만 유지하는 것.


이 방식은

친절하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 늪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이 글은

내가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운이 좋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기록한다.


가장 힘든 정답이

결국 정답이었다는 것.


이것이

송사에 말렸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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