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장면 앞에서, 내가 선택한 태도에 대하여
나는 종종
‘저러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보고, 장면을 보고,
이미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어렴풋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대개
지적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않는다.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피로에 가깝다.
괜히 나섰다가
또다시 책임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소모를 남기는지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피한다고 끝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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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피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간을 두고,
조금 다른 얼굴로
결국 다시 내 앞에 왔다.
그럴 때마다 깨닫게 된다.
아, 이건 내가 외면해도
누군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구나.
그리고 그 ‘누군가’가
결국 다시 나였다는 사실을.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비밀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지 않은 감정도,
정리하지 않은 판단도,
무의식 속에 남겨둔 결론도
완전히 숨겨지는 법은 없다.
완료되지 않은 것들은
잊히는 대신
삶의 다른 장면으로 옮겨갈 뿐이다.
형태를 바꿔서,
시점을 늦춰서,
그러나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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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말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길을 가다
노인을 향해 함부로 말하는 젊은이를 보면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훈계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러지 말라고만 한다.
천변을 걷다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누가 버렸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줍는다.
내가 버린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산책 나온 개가 남긴 배설물을
주인이 치우지 않고 지나가면
그걸 대신 치운 적도 여러 번 있다.
불쾌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돌아서는 것도
내가 원하는 선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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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듣는 순간들
어느 날은
천변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와
거대한 푸대자루에 담긴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고 가려는 사람을 보았다.
그때도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고,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러지 말라고.
돌아온 건
쌍욕이었다.
집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그 앞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또 욕을 들었다.
길에서 흡연하며
불붙은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던지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했을 때도
길에서 담배도 못 피우느냐는 말과 함께
역시 욕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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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이 분명해지는 순간
이쯤 되면
패턴은 분명해진다.
내가 개입한 장면들은
극단적인 상황도,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의 편의가
공공의 공간을 침범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러지 말라”고 말한 사람은
항상
내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예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규칙을 설명하지도 않았다.
도덕을 들이밀지도 않았다.
그냥
그 행위를 멈추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말조차
상대에게는
간섭이 되었고,
침범이 되었고,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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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피하지 않는 이유
후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괜히 말을 걸었나 싶은 순간도 있었고,
왜 이런 일을
자꾸 내가 감당해야 하나 싶은
피로도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놀랍지는 않았다.
이 장면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그 쓰레기는 그대로 남았을 것이고,
그 오염은 반복되었을 것이고,
그 불편함은
결국 다시
내가 겪게 되었을 것이다.
욕을 한 사람은
그날로 끝이었겠지만,
그 자리를 통과하는 나는
며칠 동안
같은 풍경을 다시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욕설은
예상 가능한 비용에 가까웠다.
내가 개입하지 않았을 때
대신 치르게 되었을
다른 종류의 불편함을
앞당겨 받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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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문제
이건
정의감의 이야기가 아니다.
착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고치겠다는 포부도 없다.
다만
이미 보아버린 사람은
그 장면을
미완으로 남겨두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말하지 않으면
그 장면은 그대로 남고,
말하면
욕을 듣는다.
나는 그 둘 중에서
후자를 선택해왔다.
이건 각오나 결심이 아니라
생활 방식에 가깝다.
피할 수 없는 것 앞에서
괜히 돌아서지 않는 것.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담담하게 처리하는 쪽을 택하는 것.
조금 덜 평온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같은 문제로
다시 같은 자리에 서지는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