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탐 ― 자랑이자 경고
김탐은 나를 선택했다.
그때 내가 준비돼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부담스럽다고 말했고, 그래서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김탐은 짧은 다리로, 방향도 재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달려왔다.
주먹만 한 똥개가, 털은 부숭부숭한 채로.
요란해서 그런 줄 알았다.
까불까불한 성격의 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보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건 흥분이 아니라 결심의 떨림이었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도박이었다.
나를 뭘 믿고 그랬을까.
김탐은 눈치를 보는 개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비위를 맞추지 않고,
다른 개들과 어울리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다만 나에게만,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을 때만
그 눈을 한다.
집을 난장판으로 해놨을 때,
먹지 말라고 한 걸 먹었을 때.
그 눈은 복종이 아니라
관계의 표시다.
김탐은 나를 지킨다.
아무 소리에나 짖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소리,
내 몸이 먼저 굳어지는 소리가 나면
앞서 짖는다.
여기까지라는 뜻이다.
넘어오지 말라는 신호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훨씬 정확하다.
사람들이 김탐을 알아본다.
서울에서, 비행기에서,
사람 많은 동네 산책길에서
개를 오래 키워본 사람들이 다가와 묻는다.
“이 개 어디서 낳았어요?”
그건 종을 묻는 말이 아니다.
이런 결의 개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이다.
김탐의 종은 믹스라고 적혀 있다.
예전 말로 하면 발바리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다.
발바리는 사람 곁에서 살아남은 개들이고,
눈치보다 기준이 먼저인 개들이며,
자기 사람 하나는 정확히 아는 개들이니까.
김탐은 케이크를 먹을 때도 그렇다.
자기가 좋아하는 빵과 생크림만 먹고
딸기는 남긴다.
딸기는 내가 먹으라고
생크림을 다 핥아놓는다.
같이 사러 갔고,
같이 집에 돌아왔고,
같이 먹었다.
참고로 그 케이크는 조그만데 4만 8천 원이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밤에 잘 때 김탐은 가끔 나를 바라보다가,
가끔은 내 등에 자기 등을 맞대고 잔다.
그럴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 사랑해, 김탐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러면 김탐은 한숨을 푹 쉰다.
아마 나를 좀 한심하게 볼지도 모른다.
그래도 계속 곁에 있다.
7년을 함께 살았다.
이제 김탐은 배우는 개가 아니다.
자기 세계관이 갖춰진 개다.
믿음직스럽고, 조용하고,
자기 기준으로 살다가
나를 그 기준 안에 들인 개다.
그래서 가족이 됐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내 개 김탐을 무시하지 말라.
귀엽다고 무시하지 말라.
사람들이 다가와 만져보려 하면 묻는다.
“물어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뭅니다.”
실제로 물어서가 아니라,
아무나 만질 수 있는 개가 아니라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도 잘 문다.
잘 물 수 있다.
선을 넘지 않으면
물 일은 없다.
이건 위협이 아니라
질서다.
작지만 강한 개,
그리고 그 개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