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사는 사람 민원 넣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 말이 현실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침묵을 요구하는 주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없이 산다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행위를 가리는 포장이 되었다.
무질서는 사정으로,
침범은 불가피로,
위협은 이해로 바뀐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금세 비정해진다.
그 말이 작동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무엇을 했는지는 묻지 말고
누가 했는지만 보라는 것.
규칙을 이야기하면 도덕극으로 방향을 틀고,
옳고 그름 대신 약자를 세운다.
결론은 늘 같다.
말하지 말라. 참아라. 넘어가라.
하지만 가난은 이유가 될 수 있어도
면허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사정이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고,
위협이 되고,
침범이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사정이 아니다.
행위다.
나는 오래 참았다.
참음이 미덕으로 돌아오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참음이 허락으로 오해되는 순간들이 쌓였다.
그때마다 돌아온 말은
“없이 사는 사람인데 왜 그러냐”였다.
그 말은 연민이 아니었다.
책임을 지우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칙을 정했다.
욕을 먼저 쓰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의 언어가 욕과 모욕과 위협일 때,
그 언어는 그대로 거울처럼 돌려준다.
보복이 아니라 번역이다.
개값이든 깽값이든,
값은 자기가 정한 통화로 계산한다.
결과는 늘 같았다.
사건은 여럿이 만들었고,
계산서는 나 혼자 받았다.
칠십만 원, 구십만 원, 또 구십만 원.
나만 벌금 잔치였다.
그건 운이 아니라 구조였다.
여럿의 무례는 소음으로 흩어지고,
혼자의 대응은 책임으로 응고되는 구조.
그래서 그때는 MODE를 바꾼다.
내 입에서 욕 두어 마디가 출력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위치가 다시 정해진다.
이기려는 말이 아니라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정지 신호로.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말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 말은 문제를 옮긴다.
행위에서 신분으로,
책임에서 연민으로.
나는 그 이동을 거부한다.
말하지 말라는 요구에
나는 기록으로 답한다.
참으라는 주문에
나는 절차로 간다.
그리고 필요할 때만,
MODE를 바꾼다.
이건 냉혹함이 아니다.
정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