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성격이 아니다.
상황이다.
금동에서 나는 오래 참았다.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통했고, 침묵이 오해로 바뀌지 않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는 참음이 자주 허락으로 번역됐다. 내 땅에 차를 대고, 출입문을 막고, 사람이 다니는 길을 점유해 놓고, 문제를 말하면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설명은 없었다. 맥락도 없었다.
“여기선 이렇게 한다”는 얼굴뿐이었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오가던 시기가 있었다. 폐암 말기라는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울 수 없었다. 내 땅인데도. 며칠씩 빼지 않는 차, 받지 않는 전화, 바로 앞에 있으면서 외면하는 태도.
그때 욕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게 하기 위해 나왔다. 더 밀리면 말이 아니라 다른 대응이 나온다는 정지 신호로.
아버지는 말했다.
“참아라. 어떤 부당한 경험을 겪어도 참아라.”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 선택으로 가족을 지켜왔다. 다만 그날 나는 알았다. 그 말만으로는 이 자리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도. 참음이 존중으로 돌아오던 시간은 지나갔고, 참음은 허락으로 오해되었다.
나는 욕을 먼저 쓰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의 언어가 욕일 때에는 그 언어를 거울처럼 돌려준다. 보복이 아니라 번역이다. 상대가 욕으로 말하면 그 언어의 값은 그 언어로 치른다. 개값이든 깽값이든, 값은 자기가 정한 통화로 계산한다. 그런 경우를 나는 참지 않는다. 참음은 미덕일 수 있지만, 모든 상황에서 의무는 아니다.
정말 창의적으로 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참았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는 대개 이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참음이 무례를 키우고, 질서를 지우고, 침묵을 허락으로 바꾸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MODE를 바꾼다.
내 입에서 욕 두어 마디가 출력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위치가 다시 정해진다.
욕이 필요한 상황은 있다. 그것은 분노의 순간이 아니라 질서가 무너진 자리다. 그 자리에서 욕은 가장 낮은 언어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현실 언어다. 나는 그 언어를 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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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워딩
아래는 내가 만든 문장이 아니라, 나에게 던져진 언어다.
• “좆같은 년아, 개조시나 빨아라.”
• “니년 봐분다.”
• “관종이냐?”
• “미친년 유명해.”
• “아줌마 이야기좀 하게.”
• “여기가 니땅이냐.”
이 워딩의 화자를 특정할 수 있으나, 기록하지 않는다.
이 글은 고발장이 아니라 기록이다.
지금도 금동 일대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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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또한 보고 있다면, 정확히 조준해서 말하겠다.
“이 잡것들아. 니들한테는 욕도 아깝다.”
이건 싸움을 걸겠다는 말이 아니다.
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욕조차 건네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도 말했다.
저들을 이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 말을 섞지 마라.
그 말은 냉혹해서가 아니었다. 현실을 오해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웃이라는 말은 책임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 선을 지키고, 말을 지키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그게 무너진 자리에서는 ‘이웃’이라는 말이 오히려 사람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말을 섞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참을 수 있을 때는 참는다. 그러나 참음이 허락으로 오해되는 순간, MODE를 바꾼다.
여기까지다.
이후의 언어는 나의 몫이 아니다.
• 해당 이미지는 특정 행위가 반복되던 시간대와 공간을 기록한 자료다.
• 사건의 판단이나 인물 특정이 아닌, 당시 상황의 맥락을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 이 이미지는 주장이나 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