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쪽으로 걷는다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 책을 읽은 건 십 년 전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고,
아무것도 제대로 감각되지 않는 상태였다.
슬픔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고,
상실이라는 말조차 피부에 닿지 않았다.
다만 세계가 전반적으로 무뎌져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이 소설은 이상하게 잘 읽혔다.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위로하지도 않았으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판단하지 않는 문장들이
사건을 그대로 놓아두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이해했다기보다
견딜 수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의 내용은 세부적으로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읽는 동안의 상태는 분명히 기억난다.
감정이 작동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던 책,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책.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때의 무감각과 함께
이 텍스트가 놓여 있던 자리를
쉽게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내게 어떤 위로나 해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감각되지 않던 시절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소설로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