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능숙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어떤 능숙함은 사회의 기준을 영구히 낮춘다.
나는 한동안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어도 되는 상태를 정상으로 믿었다.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고,
법은 법대로, 행정은 행정대로 작동해서
내가 모든 것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기본적인 원칙은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신뢰 위에서 개인의 삶은 굴러간다.
문제는 그 신뢰가 깨질 때다.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절차가 생략되고
설명은 사후에 붙고
책임의 위치가 흐려질 때.
그 순간 국민은 갑자기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려 나온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상태,
그 자체가 이미 비정상이다.
이런 국면에서 종종 ‘능숙한 정치’가 등장한다.
실패를 실패로 부르지 않고,
위험을 위험으로 남겨두지 않으며,
리스크를 성과의 일부로 흡수하는 언어.
법적으로 틀리지 않고,
형식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쉽게 반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 능숙함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책임의 경계를 흐리며,
같은 방식이 반복될 수 있는 토양을 남긴다.
능숙한 정치 아래에서
사회는 잠시 조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기준선이 함께 낮아진다.
어제는 문제였던 것이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내일은 ‘그나마 나은 결과’가 된다.
반대로 서툰 정치는 불편하다.
조율이 부족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실패였는지는 남는다.
실패가 실패로 기록되는 사회는
다시 고칠 수 있다.
정치는 쇼가 아니라 관리다.
국민이 매번 나서서 감시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일,
관심을 갖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정치의 존재 이유다.
그래서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온다.
정치는 능숙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어떤 능숙함은 사회의 기준을 영구히 낮춘다.
이 문장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한 걸음 덜 위험한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