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너무 많이 봐온 얼굴들에 대하여

— *Men*을 보고

by Peppone

알렉스 가랜드가 연출한 Men은

한 여성이 낯선 시골 마을에 머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하퍼를 연기한 **Jessie Buckley**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고립된 상태로 화면에 놓인다.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서사적 공감이 아니라,

여성이 놓이는 조건 자체를 하나의 구조로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불편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 자명함은 오래도록 주목받지 못했고, 조명되지도, 제대로 표현되지도 못했다.

표현을 시도하는 순간,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제압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제압은 우발적인 반응이 아니다.

발화는 언제나 중립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이미 어떤 규범이 허용하는 언어인지에 대한 심문이 선행된다.

무엇을 느꼈는가보다, 그렇게 느낄 자격이 있는가가 먼저 판단된다.

여기서 여성의 말은 자유로운 진술이 아니라, 검증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말은 곧장 규범의 관리 하로 편입되고, 그 과정에서 경험은 축소되거나 변형된다.


권력은 노골적인 억압보다 훨씬 자주

‘과민하다’, ‘주관적이다’, ‘사적인 문제다’라는 언어를 통해 작동해왔다.

이 언어들은 폭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폭력을 정치 이전의 문제로 밀어낸다.

그 결과 여성의 경험은 공적 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채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 문제로 환원된다.


이 환원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구조적 배제다.

상징화되지 못한 경험은 말이 되지 못한 잔여로 남고,

그 잔여는 다시 “문제는 없다”는 질서를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이데올로기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은

항상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하는 데 있다.

그래서 불편함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리된다.


이 지점에서 침묵은 선택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말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이해 부족이 아니라 과잉 소진이다.

이미 충분히 설명했고, 이미 충분히 반박을 통과했고,

그럼에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다.


Men은 바로 이 상태를 전제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나쁜가가 아니다.

이 영화는 개인 윤리의 서사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남성의 언어, 시선, 태도, 권위가 기본값이 된 세계에서

여성이 어떻게 고립되는지를 하나의 폐쇄된 구조로 배치한다.


제목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등장하는 남자들은 서로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논리와 태도를 반복 재생하는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친절, 조언, 동정, 종교적 훈계, 행정적 권위, 농담까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의심하게 만들고, 축소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끝내는 여자의 감각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 모든 과정은 과장된 공포로 연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불편하다.

현실에서 이미 수없이 봐온 얼굴, 말투, 거리 두는 방식이

거의 가공되지 않은 채 화면 위에 놓인다.

그래서 이 불편함은 새로운 인식에서 오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압축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 영화가 정확한 이유는 설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왜 이것이 문제인지 설득하지 않고,

여성의 경험을 다시 언어화해 증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 대신, 말이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 자체를

영화라는 형식으로 고정해 놓는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도 정리가 되었고,

보고 나서도 정리가 되었다.

혼란은 없었다.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미 너무 많이 봐와서

굳이 다시 말하지 않게 되었던 상태를

하나의 정확한 형식으로 남긴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긴다.


이건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에게 이해되기를 선택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제공한다.


나는 그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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