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바깥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표정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얼굴들

by Peppone



국가의 안쪽에서 살아본 사람과 바깥에서 살아본 사람은 표정이 다르다.

그 차이는 말투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기대해도 되는지, 무엇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지에 대한 감각의 차이다.


국가의 안쪽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요구한다. 항의하고 설명하고, 책임을 묻는다. 말이 통할 수 있다는 전제를 아직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의 바깥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말을 아낀다. 분노를 크게 만들지 않고, 억울함을 제도에 맡기지 않는다. 말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경험을 이미 통과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동북지방, 도호쿠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런 표정이 있다. 무뚝뚝하다고 불리는 얼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표정은 비어 있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은 뒤, 더 이상 국가를 향해 얼굴을 들지 않게 된 사람들의 표정이다. 그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변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살아남는 데 필요 없는 말을 일찍 정리했을 뿐이다.


2011년 이후, 그 표정은 더 굳어졌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 이후에도 국가는 끝내 개인의 상실을 언어로 복원해주지 않았다. 책임은 관리로 대체되었고, 고통은 통계로 정리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말은 더 이상 관계의 수단이 아니었다. 말은 남는 것이 없는 행위가 되었다. 그래서 도호쿠의 표정은 조용해졌다. 울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는 대신, 눈을 낮추고 몸으로 버틴다.


이 표정은 낯설지 않다. 한국의 전라도, 특히 광주에서도 비슷한 얼굴을 본다. 다만 경로는 다르다. 광주는 말한 도시다. 침묵하지 않았고, 외쳤고, 기록했고, 싸웠다. 그래서 오랫동안 벌을 받았다. 광주의 사람들은 국가를 향해 말을 던졌고, 그 말이 되돌아오는 대신 낙인이 붙었다. 문제적이라는 이름, 과격하다는 이미지, 믿을 수 없다는 시선. 그 시간을 통과한 뒤 남은 표정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한 번의 절규 이후,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겠다는 결정의 흔적이다.


그래서 광주의 표정과 도호쿠의 표정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 도호쿠의 침묵은 체념에 가깝고, 광주의 침묵은 기억을 품은 정적에 가깝다. 그러나 둘 다 공통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국가는 언제나 나중에 온다는 사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바깥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없다. 대신 계산이 있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어떤 말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나은지에 대한 계산. 그 표정은 냉소가 아니라 생존의 결과다. 감정을 잃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된 얼굴이다.


그래서 어떤 지역이 조용해 보인다면, 그것은 무언가가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말해봤고, 너무 많이 무시당해봤기 때문이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표정은, 국가와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표정이다.


그 표정은 우울하지도, 고결하지도 않다. 다만 정확하다.

무엇이 보호되지 않았는지, 무엇이 끝내 회수되지 않았는지를 알고 있는 얼굴.

국가의 바깥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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